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은영 May 08. 2019

34. 삶의 의미

빅터프랭클

내가 자주가는 네이버 대형 카페에는 심심찮게 비슷한 질문들이 올라온다. 
"여러분은 왜 살아요?" "사는 즐거움이 하나도 없는데 어떡하죠?" "우린 왜 태어난 걸까요?"

잠시 후, 그에 상응하는 비관적인 답변들이 쏜살같이 달린다. 
"저도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사는 즐거움이 전혀 없어요." "애당초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우리 부모님은 절 왜 낳은걸까요?"

답변 중 한 두개는 그래도 해결책을 제시해주려 노력한다. 
"취미 생활을 가져보세요." "자신만의 소확행을 찾아야죠." "새로운 모임이라도 나가보세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질문자는 이런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미 마음 속에 '삶은 덧없는 것'이라고 규정지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은 그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살아갈 이유와 의미'가 바로 그것이었다. 빅터 프랭클 본인은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날 것과 자신이 쓴 원고를 발표하는 것이 생존의 목적이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마실 물을 아껴 면도를 하고, 몸을 정돈했다. 금방이라도 가스실로 끌려갈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의지를 다진 것이다.

수용소에 있던 한 사람은 특정일에 전쟁이 끝날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이 되었음에도 전쟁이 끝나지않자 몸이 급속도로 나빠져 결국 죽고 말았다. 희망이 사라져 버린 현실은 면역체계를 약하게 만들고,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후에 '로고테라피'라는 심리요법을 체계화한 빅터 프랭클은 환자들에게 묻곤 했다. "왜 자살하지 않으시죠?"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환자들은 결국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고통에 관한 니체의 말을 떠올려보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오늘도 삶이 고통스럽다면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점점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나는 예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좋은 습관을 들여 삶을 체계화 시켰고, 약점보다 강점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훨씬 많아졌다.

나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이후,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늘 생각한다. '내 삶의 내일이, 다음 달이, 내년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33.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