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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May 02. 2023

제주여행

커피와 통조림


금요일 자정 '퀸 제누비아호'라는 배를 타고 제주를 향했습니다.

6시에 제주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올래 1코스인 '말미오름'에서 시작해서 '광치기 해변'까지 15.1킬로미터의 원데이 트래킹에 참여했습니다.

와.... 그런데 여러분은 커피에 목말라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어제 하루가 그랬습니다.

그럼 제가 원데이 트레킹을 하면서 커피에 목말랐던 어제 하루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말미오름'을 넘어 '알오름'을 지나고 종달리에 도착해서야 저흰 늦은 아침을 먹었어요.

' 안녕 종달리 '라는 한식뷔페에서 제주도이지만 전라도식의 반찬 가득한 아침을 먹고 커피를 그리워하며 다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종달리의 골목길에 벽화와 작은 서점과 카페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아직 오픈전이었습니다. 한 군데 오픈 한 곳이 있어서 테이크 아웃 커피를 해서 나왔는데 커피 맛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bar안의 상황이 커피를 맛있게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역시나 커피 맛은 완전 꽝이었어요. 커피에 대한 모독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 모금으로 식후의 아쉬움을 달래며 컵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어요. 커피가 그렇습니다. 맛을 줄 수는 없더라도 온기라도 나누어 주는 버릴 것 없이 사랑스러운 것이 커피입니다.. 그렇죠?

이렇게 커피를 그리워하며 종달리 소금밭을 지나고 sns에서 핫 한 '목화 휴게소'를 만났습니다. 

해변 앞을 마주한 슈퍼인데 가게 건너편에 준치가 걸려있는 풍경이 "이 집은 오징어 맛집이구나" 하는 인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해풍을 맞으며 말려지는 반 건조 오징어를 맥반석에 구워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었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덜 불었어도 맥주 한 캔 하고 싶었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서 맥주는 패스하고 맥반석 오징어만 사서 또다시 길을 떠납니다. 멀리 보이는 성산을 마주하며 담요를 뒤집어쓰고 발길을 내딛고 총총걸음을 걷습니다.


성산갑문 입구에서 성산 일출과 마주한 순간 저는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멜로디가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왈츠의 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두 팔 벌려 스텝을 밟으며 에디트 삐아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상상이 되나요?

에디트 삐아프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다운 사랑이었던 마르셀 세르당을 잃고 절망에 빠졌다가 부른 사랑과 희망의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의 제목은 '사랑의 찬가'라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에서 주요 영화적 장치로 등장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가사를 보면 그 절절함이 가히 상상이 됩니다.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사랑이 매일 아침 내 마음에 넘쳐흐르고

내 몸이 당신의 손 아래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의 사랑이 있는 한

내 게는 대단한 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나를 원하신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금발로 머리를 물들이기라도 하겠어요

만약 당신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하늘의 달을 따러, 보물을 훔치러 가겠어요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준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는다 해도

나는 무엇이건 해 내겠어요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당신의 인생이 갈라진다고 해도

만약 당신이 죽어서 먼 곳에 가 버린다 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 겐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 또한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없는 푸르름 속에서

두 사람을 위한 영원함을 가지는 거예요

이제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속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사랑의 찬가를 온몸으로 느끼며 성산 일출의 장관을 마주한 순간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나를 품어주는 것 같았고 순간의 감사와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은 벅차오름에 아마도 저의 발끝과 손끝이 춤을 출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저의 볼을 스치는 바람과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어제의 감동을 회상시켜 줍니다. 

수마포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광치기 해변에 도착하자 펼쳐진 노란 유채꽃의 반란을 마주합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유채의 향기가 봄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해 주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된듯한 기분이 들면서 하루의 미션을 마쳤다는 완주감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다시 또 따뜻한 커피가 그리워졌습니다.


와..... 요즘 그렇게 흔한 카페가 이렇게 필요할 땐 안 보인다는 것도 신기했고 하루 종일 커피 한잔을 제대로 못 마시는 날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겪어보는 경험으로 신기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려 제주항에 도착해서 승선 후 우리들은 급 몰려오는 식욕에 육개장과 생선가스와 생맥주 한잔으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선실 밖으로 멀어지는 제주항 과의 4월 일정을 기약하며 캡슐 침대가 있는 객실로 이동해서 각자의 시간을 담당합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캡슐 안의 희미한 불빛으로 가져간 책을 마주해 봅니다.

4월 트레킹에는 책을 가져오기보다는 카플라노와 원두를 준비해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겨 봅니다. 

3만 보의 기록을 기억하며 자체 제작한 나만의 통조림 하나를 간직해 봅니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두 주인공의 유골을 통조림에 담아 히말라야 산맥에 묻어두는 장면을 떠올리며 내 나이 쉰다섯의 하루를 통조림 속에 담아 봅니다. 언제 꺼내질지 모르지만 일단 오늘을 담아봅니다. 변하지 않을 감사와 사랑이라는 방부제와 함께... 오늘을 사랑하고 다가 올 내일을 먼저 감사하며 현실을 마주한 나를 많이 많이 사랑하는 우리들의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합법적으로 승인된 외박의 즐거움은 한 달을 살아내는 원동력이 되어 주고 오피스 라이프의 산소통이 되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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