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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ug 22. 2021

"엄마는 다 잊어, 괜찮아 우리 딸"

합격해서 효도하면 되지!


면접 준비를 하며 더운 여름을 보냈다.

모의면접 때 종종 정장을 입는데 유독 이상한 포인트에 신경이 쓰였다.


종아리 알


상체보다 하체가 발달한 체형이지만, 그때의 나는 전체적으로 꽤 마른 편이었다. 그럼에도 추리닝만 입고 공부만 하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치마도 입다 보니 혼자만 이상한 포인트(?)에 꽂혀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여느 날처럼 면접 자료를 찾던 중 이전에는 관심도 없던 광고에 눈이 갔다.


주사 한방!
비포&애프터 확실합니다!



종아리 보톡스 광고였고, 정말 심한 알 다리와 매끈해진 전후 사진이 올라와있었다.

'오.. 나보다 심한데? 나는 더 효과 볼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모아둔 돈은 없었고, 스터디 때 필요한 비용은 그때그때 엄마에게 출처를 밝히고(?) 타쓰던 시절이었다. 보톡스가 너무 맞고 싶었던 나는 '엄마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시술비용(?)을 받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다가 슬쩍 얘기를 꺼냈다.



[나] 엄마~ 같이 면접 준비하는 동기 언니들이 그러는데~~ 요즘에 면접 준비하면서 종아리 보톡스 많이 많는대~
[엄마] 그래~?
[나] 응! 면접 볼 때 정장치마를 입으니까 다리가 예뻐야 도움이 된대~스튜어디스도 그렇잖아~~ 뒷모습이 예뻐야 좋지~그치~?



말도 안 되는 얘기에도 엄마는 '그렇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고개만 끄덕일 뿐 '너도 맞을래?' 라거나 대화의 진전이 없었다. 며칠 내내 엄마를 따라다니며 보톡스 얘기를 꺼냈다.


내 딴에는 은근슬쩍 설득하려는 의도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속이 빤히 보이는 말을 졸졸 따라다니며 해댄 철없는 딸의 모습이었다.




눈치만 보던 어느 날, 엄마에게 은근슬쩍 보톡스 얘기를 꺼냈다.

[엄마] "XX 엄마는 보톡스 맞고 턱이 아직도 얼얼하대~부작용도 위험하고... 그냥 맞지 말자~"


며칠을 엄마 입만 쳐다보며 기다리던 중, 결국은 '안된다'는 답을 들으니 갑자기 너무 서러웠다.


[나] "엄마는 내가 다리가 안 예뻐서 면접에서 떨어져도 상관없지?! 보톡스도 안 맞혀주고!!!"  


드라마에 나오는 사춘기 딸도 아닌 늙은(?) 나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 침대에 엎드려 혼자 진심으로 서러워했던 것 같다. 결국 보톡스는 맞지 못했고, 손으로 조물조물 열심히 마사지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엄마가 사준 바디크림으로






그때는 '공부 열심히 해서 합격했는데.. 기특하다 해놓고 보톡스도 안 맞혀주고!'라는 어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받은 것은 잊고 마치 엄마를 위해 합격한 것처럼,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만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의 삶은 너무 고단했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

돈 벌어오는 자식은 없고, 공부 중인 자식만 4명.


아빠 월급은 6인 가족이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기에,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집안일과 함께 항상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하셨다.


그런 와중에 아빠가 반대하는 시험 뒷바라지를 1년 간 해주셨으니, 한정된 생활비 안에서 쪼개고 또 쪼개셨을 것이다. 딸의 빤히 보이는 '보톡스 맞고 싶어'라는 말에 모르는 척했지만 가격도 알아보셨을 것이다.




나중에 합격하고 보니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한 동기들도 많았고, 수험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게 보통이었다. 반면 대학생 신분을 겸하며 첫 시험 도전이었던 나는 공부하면서 경제적 부담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가족 구성원중 누군가가 경제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고민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톡스 한번 맞는다고 해서 가세가 기울거나, 엄마에게 그 돈이 없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합격해서 효도하면 되지, 나는 합격하는 게 돈 버는 거야'라는 자기 위로를 하며, 경제적 문제를 외면한 나의 마음의 짐까지 짊어졌을 엄마에겐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



혹시나 면접에 떨어져 다시 시험 준비를 하거나 학교로 복학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을 엄마는 아직 '예비합격생'인 딸의 요구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합격한 데에는 나의 노력이 팔 할이며, 마치 엄마를 위해 공부한 것처럼 지원을 당연시 여기며 쉽게 서운해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시고, 뒷바라지해주신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낀 게 1이라면 엄마가 느꼈을 서운한 감정은 100배는 될 것 같았다. 애교는커녕 말을 예쁘게 하는 재주는 1도 없어 상처되는 말을 많이 했을 나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회사에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끊기 전 어색한 말투로 얘기했다.


[나] "... 그때 새벽같이 일어나서 도시락 싸줘서 고마웠어~~~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네ㅎㅎ ^^;; 그때 짜증도 많이 내고 엄마는 진짜 힘들었겠다~~"


잠깐 침묵하던 엄마는 말했다.


[엄마] "..... 정말?? 더 잘 싸줄걸 그랬네... 그리고 엄마는 다 잊어 괜찮아, 원래 엄마들은 그래"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날 것 같던 나는 일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대답이 나에게는 너무 의외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힘들게 도시락 쌌던 일이 엄마에겐 '더 잘 싸줄걸'이라는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평생을 사춘기인 것처럼(?) 예민한 딸이 줬을 상처되는 말들이 '엄마들은 원래 다 잊으니 괜찮은 일'이 되어있었다.



'사랑받지 못했다'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그리고 내가 가족에게 '상처받은' 만큼 나도 가족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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