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대본을 외운 듯이 자기소개서 내용을 달달 외워온 지원자들을 면접에서 만날 때가 종종 있다.
면접(面接)은 한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자리다. 서류전형을 거쳐서 면접에 온 지원자들인 만큼 자기소개서 내용은 면접관들이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암기해서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면 굳이 면접에 부를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마음먹은 대로 완벽하게 암기한 내용을 면접에서 그대로 옮기면 과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오히려 대본을 읊듯이 자기소개서를구구절절 설명하다가는 언제 면접관 입에서 “요약해서 말씀해주세요” 또는 “그만 됐습니다.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면접관들은 지원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대체로 자기소개서를 토대로 면접을 진행한다. 면접을 시작하기 전에 지원자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고 어떤 질문을 할지 미리 준비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면접관이라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수시로질문을 바꾼다.지원자의 대답에 따라 사실 검증을 위해 꼬리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지원자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식·태도·아이디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의도된 질문을 건네기도 한다.
질문을 통해 면접관이 지원자에 대해 확인하고 싶은 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입사 후에 맡게 될 일(직무)을 잘할 수 있는 의욕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즉 ‘직무적합도’다.
예를 들어 공모전 수상경력 등 지원자가 자기소개서에서 소개한 직무 관련 경험이 과장되거나 부풀려졌다는 느낌이 들면 사실 검증을 위해 구체적인 내용을 집중적으로 캐묻는다.
다른 하나는 ‘조직적합도’로 입사 후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조직이나 기업문화에 원만하게 적응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만약 면접관이 지원자가 ‘외골수’나 독선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동료직원들과 잘 어우러져서 일할 수 있는 품이 넓고 살가운 사람인지가 궁금하다면 소통능력 또는 대인관계 역량과 직결된 질문을 주로 하게 된다.
필자도 면접에서 그때그때 질문의 초점을 바꾼다. 앞에서 ‘직무적합도’를 평가해서 합격점수를 주기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판단하면 이제 관심의 초점을 지원자의 ‘조직적합도’ 즉, 입사 후에 기업문화와 맞지 않거나 동료직원들과 불협화음을 빚을 우려가 있을지에 대한 검증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업에 대한 가치관, 다른 사람과의 협업 경험 등 태도와 관련된 질문을 주로 건네게 된다.
만약 조직적합도·직무적합도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합격 판정을 내린 지원자라면 자연스레 질문의 방향은 입사에 대한 ‘절실함’이나 ‘열정’으로 향한다.
말하자면 지원동기, 입사 후 포부 등을 중심으로 우리회사가 지원자에게 수많은 기업 중에 ‘온리 원’(Only One)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하나’(just one of them)에 불과한지를 검증하기 위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건넨다. 우리회사에서 지원한 직무를 하려는 진심과 절박함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우리회사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지원한 직무에는 언제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졌는지?” “입사를 위해 지금까지 어떠한 준비를 했는지?” “우리회사의 대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지?” 식의 질문이다.
면접에서 호감이 가는 지원자에게 반드시 하는 질문이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2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호감이 가는 지원자에게 ‘반드시 하는 질문’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우리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55.5%·복수응답), ‘입사 후 직무나 기업문화가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30%), ‘입사한다면 어떻게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느냐’(29.6%), ‘언제까지 근무할 생각이냐’(17.8%), ‘현재 지원한 다른 회사가 있느냐?’(13%) 등이다.
이와 관련해 사람인은 “마음에 드는 지원자로부터 조직에 얼마나 적합한지, 얼마나 오래 근무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출처: 문화저널21, 2020.2.26
한마디로 면접의 흐름은 한 치 앞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언제 허를 찌르는 질문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실제 면접에서는 기상천외한 질문으로 지원자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훈민정음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해준다면 얼마까지 대출을 해줄 수 있을까요?”
필자가 근무하는 은행의 면접에서 실제로 나왔던 질문이다. 그때 질문을 받은 지원자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250조 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를 묻자 그 지원자는 “세계에 자랑할만한 민족의 문화유산인 훈민정음은 무한대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OO은행 자산을 다 처분해도 감당이 안 될 가격입니다. 현재 OO은행 총자산이 250조 정도로 알고 있으니 그렇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원자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면접관들은 파안대소했고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답변 속에 재치와 순발력은 물론 입사를 희망하는 은행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라면 이 질문에 과연 뭐라고 답을 했을까?
필자도 더러 황당한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지원자가 살고 있는 OO시의 모든 중국집을 통틀어 하루에 팔리는 자장면은 몇 그릇일까요?” 또는 “지원자가 살고 있는 동네 마을버스의 하루 이용승객은 몇 명일까요?”, “OO은행 전국의 모든 점포를 찾아오는 고객은 하루 평균 몇 명일까요?” 등이다.
일전에는 “한라산을 서울로 옮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북극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다면 어떻게 팔겠는가?”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어떻게 설명할까?” “일간지 한 부에 글자가 몇 자나 들어 있을까?” “스쿨버스 한 대에 탁구공을 몇 개나 실을 수 있을까” 등 기업 면접에서 실제 등장했던 황당 질문들을 추려서 소개한 기사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의 공통점은 “정답이 없다” 또는 “(심지어 질문을 한 면접관조차) 정답을 모른다”는 것이다. 일간지 한 부에 글자가 몇 자나 들어 있고 스쿨버스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탁구공이 몇 개냐가 지원자의 역량이나 자질과는 뭔 상관이란 말인가. 도대체 면접관들은 왜 이런 얄궂은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소위 ‘압박 면접’을 통해 지원자들을 골탕 먹이려는 것일까?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뇌피셜’, ‘지피셜’처럼 지원자를 코너로 몰아붙여 떨어뜨리려는 의도적인 질문일까? 사실 황당한 질문들의 목적은 지원자들의 순발력이나 상황 대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 놓일 때 본심과 진면목이 나오게 마련이다.
면접관들은 절대 눈앞에 보이는 지원자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원자들의 멘털을 흔들어서라도 준비되고 연출된 모습이 아닌 ‘민낯’을 마주하고 싶어 한다.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본래 얼굴이 ‘민낯’이나 ‘쌩얼’이다.
하지만 면접에서 그런 얼굴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자신을 꾸미거나 과장하는 지원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면접은 있는 그대로, 지원자의 평소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면접관과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보이려고 애쓰는 지원자 사이에 펼쳐지는 치열한 숨바꼭질이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리한 질문을 앞세워 지원자의 쌩얼을 드러나게 하려는 면접관과 어떻게든 감춰야 하는 지원자들이 맞붙는 창과 방패의 대결인 셈이다.
따라서 면접관이 실제로 관심을 갖고 평가의 포인트로 삼는 지점은 특정한 정답을 내느냐가 아니다. 지원자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나름의 논리를 세워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 가를 보려는 것이다. 또한 당황스럽고 돌발적인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은행원·스튜어디스·콜센터 상담원 등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흔히 ‘감정노동자’라고 부른다. ‘감정노동’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고객에게 친절함을 보여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부당한 요구나 막말을 서슴지 않는 시쳇말로 ‘진상고객’을 만나서 가슴앓이를 하더라도 같이 맞서서 화를 내기보다는 지혜롭게 대응해서 원만하게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게 영업현장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서비스 직종의 면접에서 황당 질문이 종종 등장하는 이유다. 당연히 면접에서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고 해도 발끈해서 불쾌한 낯빛을 드러내거나 정신을 못 차리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황당한 질문에도 예의 바르고 정성껏 답변하기 위해서 노력하자. 합격의 관건은 대답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다. 논리가 조금 빈약하고 근거가 다소 부족해도 괜찮다.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근거로 체계적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하다. 머리를쥐어뜯어가며정답을찾는사람에게는 맥빠지는소리겠지만 애초에 옳고 그른 대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면접관이 ‘정답’ 대신 정말 듣고 싶어 하는 것
“최근 필자와 알게 된 한 학생이 본인이 희망하는 기업의 면접을 보고 나서 울상이 되어 나타났다. 아무래도 면접에서 떨어질 것 같다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토록 희망했던 회사이기에 실망감도 컸으리라.
면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더니 몇몇 케이스 질문에 대해 문제를 푸는 과정까지는 답변을 잘했는데, 한 문제는 계산해야 하는 수치가 틀렸으며, 다른 문제는 본인이 도출한 결론에 면접관들이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답변 과정을 복기해 보니, 일부 수치 계산이 잘못되고, 결론의 내용이 다소 미흡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흠잡을 데 없이 논리적이고, 독창적이었다.
필자는 그 학생에게 아마도 합격할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며칠 뒤, 그가 전화로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수치 계산에 오류가 있고, 결론이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면접관들이 이 학생을 합격시킨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면접관들이 ‘정답’이 아니라, ‘정답에 이르는 과정’, 즉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출처: 머니투데이 2015.4.6
황당한 질문을 던진 면접관은 지원자가 하는 말의 내용보다는 말하는 표정이나 태도를 더 주목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면서 그 유명한 “적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마찬가지로 “면접관에게 나의 당황함을 알려서는 안 된다”
이순신 장군의 당부는 ‘아군의 사기’를 위해서였겠지만 나의 당황함을 면접관에게 절대 알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좋은 평가를 위해서다.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쩔쩔매기는커녕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여유를 잃지 않는 멘털 강한 지원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그러니 황당한 질문을 받아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울상 짓고 낙담할 필요 없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거나 넋이 나간 듯 뜨악한 표정을 짓기보다는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는 편이 훨씬 낫다.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지원자와 멘털을 흔들기 위해 애를 쓰는 면접관 사이에 펼쳐지는 치열한 기(氣) 싸움에서는 표정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