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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pr 27. 2022

‘첫 문장’이 중요한 이유? 끝까지 읽혀야 뽑히니까.

자기소개서의 정석-16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서두의 하나인 소설 <데미안>의 첫 문장은 이렇다.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난 그것을 살아보려 했을 뿐이다. 그게 왜 그리 힘들었을까?” 이 강렬한 첫 문장은 소설의 주제를 관통한다. 소설의 배경, 인물이  문장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명구다.


 또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도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곤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기이하고 충격적인 첫 문장으로 유명하다.


 모든 행복한 가정들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족은 모두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역시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고 여전히 회자되는 최고의 첫 문장으로 꼽힌다.

 여기에 착안하여 “성공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가능하며, 어느  가지 요소라도 어긋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 나왔을 정도다. 



 그만큼 글의 성패는 첫 문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집필을 마친 후 첫 문장을 수없이 다듬는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첫 문장을 가장 나중에 쓰기도 한다. 첫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심혈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단편집 <대성당>으로 유명한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레이먼드 카버가 “소설의 첫 문장을 쓰면 나머지는 다 쓴 것이나 다름없”라고 했겠나.



  도대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첫 문장을 놓고 왜 그렇게 고민하는 걸까? 글을 계속 읽고 싶도록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첫 문장의 몫이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말 그대로 글의 시작이고 전체 글에 대한 이미지나 인상을 결정짓는다. 사람의 첫인상이 나쁘면 만남이 계속 이어지기 힘들듯이 글도 그렇다.


 우리는 글을 읽으면서 동시에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다. 즉 첫 문장을 보고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다음 문장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첫 문장을 써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읽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기소개서를 읽는 사람도 첫 문장이나 문단을 보고는 끝까지 읽을까 말까를 결정한다.

 제한된 지면이나 글자 수 내에서 자신을 최대한 알려야 하는 자기소개서의 특성을 감안하면 첫 문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첫 문장은 그 글에 대한 일종의 주제문 또는 요약문과 같다. 따라서 첫 문장을 읽고 난 다음에도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에 대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으면 읽는 사람은 전체를 다 읽기 전까지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채 계속 읽어야만 한다. 당연히 글에 몰입하기 힘들다. 아니 끝까지 읽고 싶은 의욕 자체가 사라진다.


 시간에 쫓기는 평가위원들은 애써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첫 문장을 얼추 훑어보고 별 내용이 없다 싶으면 다음 문장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일단 기대치가 낮아지면 띄엄띄엄 건성으로 읽거나 바로 다른 자기소개서로 눈을 돌리기 일쑤다. 더 볼 것도 없이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버린다는 소리다.


 기업들이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는데 ‘평균 6.7분’이 걸린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모든 자기소개서를 6.7분에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균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자기소개서마다 칼로 무 자르듯 공평하게 시간을 나눠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6.7분’은 어디까지나 평균일 뿐이다.

 읽을 만한 자기소개서라면 당연히 검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읽으나 마나’라고 판단한 자기소개서는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불 보듯 뻔하다. 실제 많은 자기소개서들이 첫 문장도 채 읽히지 않은 상태에서 탈락이 확정된다.

 반대로 끝까지 읽히면 그만큼 선택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서류전형이라는 예선을 넘어 본선인 면접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는 얘기다. ‘두괄식’이 중요한, 아니 두괄식이어야만 하는 이유다.


 두괄식은 읽는 사람이 한눈에 핵심을 파악하고 글에 쉽게 몰입하도록 만들어 준다. ‘스피드’가 화두인 세상이다. 바쁜 세상에서는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덕이다.

 요즘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기업에서도 한 장 짜리 보고서가‘경영의 미니멀리즘’으로 통한다. 일 잘하는 직원들의 필수 덕목으로 꼽힌다는 말이다.



 특히 보고서를 쓸 때 결론을 서두에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최대한 빨리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부득이하게 내용이 길어지면 보고서 표지에 결론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핵심만 추린 ‘요약문’을 넣는다. 요약문만 대충 훑어봐도 쓴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얼추 가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 결론이기도 하고, 읽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미 급한 상사들은 보고서를 펼치기도 전에 다짜고짜 “결론이 뭐야? 언제까지 어떻게 하라는 거야? 비용은? 등의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돌아보면 필자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그래서 결론은 뭐야?다.


 여러분도 바라던 대로 취업하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말을 분명 실감하게 될 테다. 이렇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본래 맡은 업무는 제쳐놓고 정해진 시간 안에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읽어내야 하는 서류전형 평가위원들은 마음이 더 급하다.

 자기소개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을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들이 유튜브를 볼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천천히, 꼼꼼히 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배속 기능’과 ‘10초 넘기기’같은 버튼을 이용해 건너뛰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할 테다. 그러니 마지막 줄을 읽을 때에서야 비로소 지원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알아챌 수 있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인내심 많은 사람이라도 ‘정주행’ 하기 힘들다. 아니 끝까지 훑어보고 평가한다는 헛된 기대는 접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다.

 반대로 두괄식은 읽는 사람이 편히 정주행 하도록 돕는다.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도중에 한눈을 팔더라도 지원자가 반드시 알리고 싶은 핵심적인 메시지만큼은 기억해줄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첫 문장은 가급적 하나의 메시지에 핵심과 결론을 넣어 완결형으로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 전체를 간추리는 역할을 첫 문장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글의 전체적인 방향이나 대략적인 내용을 대강 짐작할 수 있도록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읽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평가위원들이 전체적으로 자기소개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나 내용에 대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다음의 실제 사례를 참고해보자.


*마지막 사람

Q: 귀하의 성장과정을 소개하여 주세요.

“더 있다 가면 안 돼? 조금만 더 도와주렴! 마지막까지 같이 일하자! 방과 후 담임선생님을 도와드리던 어린아이가 늠름한 군 장교로 복무를 마칠 때까지, 제가 늘 들어왔던 말입니다.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워서, 맡은 일은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든든함에 저는 주변에서 언제나 끝까지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자기소개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자기소개서다. 필자가 최고의 자기소개서로 ‘픽’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껏 본 자기소개서 가운데 기억나는 최고의 첫 문장이기 때문이다. “더 있다 가면 안 돼? 조금만 더 도와주렴! 마지막까지 같이 일하자!자기소개서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앞에서 첫 문장은 자기소개서 전체 내용을 요약·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귀하의 성장과정을 소개하여 주십시오?”라는 질문에 대해 지원자는 ‘마지막 사람’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첫 문장을 통해 자신이 배려심 많고 다정다감한 인성의 소유자임을 효과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어떤가? 어린 시절부터 군생활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연결된 첫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원자가 어떤 품성을 가진 사람인지 머릿속에 대략 그려지지 않는가?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돕기 위해 언제나 마지막까지 곁에 머물러주는 사람이 바로 지원자다.

 필자는 첫 문장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지원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누구의 가슴에라도 콕 박힐 만한 첫 문장이다.



첫 문장만으로 LG전자 면접관 설레게 한 자기소개서 

 “군대에 입대하던 날 새벽까지 저는 밤을 새워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한숨도 자지 못한 채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첫 줄, 단 한 문장으로 LG전자 면접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자기소개서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이 지원자는 입대하기 전 한 학기 동안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끝났지만 그는 훨씬 좋은 성능을 가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결과 입대를 앞둔 새벽까지 자판을 두들겨 목표했던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그는 또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군대에 있는 동안 첫 논문을 썼다.

 이 자기소개서가 LG전자 면접관들 사이에서 최고의 자소서로 꼽힌 이유는 무엇일까? 첫 문장부터 독특한 사례에 일에 대한 열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또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실력과 끊임없는 학습의지를 보여줬다. 출처: 조선일보 2015.9.11


 잊지 말자! 시간에 쫓기는 평가위원들을 위해 우리는 평가하기 쉬운 자기소개서, 읽는 사람이 애써 고민할 필요 없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읽힐 수 있고 뽑히는 자기소개서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다.



 자기소개서에도 자리이타 정신이 필요하다. 읽는 사람을 배려해서 쓰는 것이 쓴 사람, 곧 ‘나’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괄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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