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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의 해우소

여러 자존감이 깎이는 상황에도 여태 살아남아서

by 김아현

오물로 다진 땅도 땅이라면 땅이랴

벗어날 새 없이 서글퍼져

한 겹 한 겹 뒤틀리고 마르던

어느 야윈 밤이 떠오르면


저 어여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여

견디어 살아도 야윈 가지만 더 외로워

마른 울음을 적시던 한그루여


욕지기 바다에 살고 싶어 꽈리를 틀었는가

어찌 살아보랴 싶은 마음이 욕지기 바다였던가

시간이 흘러 나아졌다는 고백을 믿는가

흐르는 게 시간이라 여기까지 밀려왔던가

무엇이 흘러서, 흐르는 게 무엇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정말 모를 일이다


여남은 인고의 뿌리가

비루한 껍질을 두르고

흔적에 몸을 축이고

오물이 뒤섞인 땅에 머무른다


백로가 떠나는 계절에

품지 못할 흐름들이 웅성거린다

견디어 산 야윈 가지들이 여태 살아서

그 몇 가닥의 한 그루 들이

봉긋한 백로를 둥지 채

보내고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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