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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글 Dec 11. 2018

눈이 오는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가족


 아침부터 시작된 눈은 하나의 목적성을 띈 채 펑펑 내리는 중이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을 목적. 세상은 다채로운 색으로 자신과 시대, 건축, 문화적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눈은 그런 개성을 오직 하나로 통일하려 한다. 이유가 있다면 지금껏 차이와 다름으로 대립하던 인간사의 갈등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랄까.


 신기하게 눈은 하얗고 그 하얀 것으로부터 어린 시절과 어린아이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순백한 감정, 순간을 말이다. 이건 아마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로서 통일시킬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눈은 펑펑 내린다 해서 함부로 쌓이지 않는다. 빨리 달리기 위해선 준비운동을 먼저 하듯 눈 또한 하얗게 뒤덮기 위해 적시는 일을 먼저 한다. 말라 있던 땅과 건물, 사람들에게 적당히 내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다 드디어 젖어들 때, 그때가 바로 쌓일 수 있는 온도니까. 그때 눈은 점차 쌓이고 세상을 덮기 시작한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다 한 가족의 가장이 자녀와 영상 통화하는 장면을 마주쳤다. 대수롭지 않은 대화가 오가며 미소 짓는 가장의 얼굴에 눈의 순백한 감정이 닮아있다. 그래서 가장이란 존재가 마치 눈과 같아 보인다. 메마른 땅에 눈을 내려 자신을 적시고 적당히 젖어들 때 순백의 아름다운 순간을 가족에게 선보이는 그런 눈과 같은 것 말이다.


 아직도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는 중이다. 이 눈이 오늘로 마칠지 아니면 충분히 적시고 내일까지 내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아름다운 순간이 훅하고 지나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조금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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