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10년 다녀보니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립니다.
모르는 전화번호입니다.
받지 말까 생각하다가 혹시 업무 관련 전화일까 봐 받아봅니다.
"나야~ 여전히 사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바깥공기 좋다~"
얼마 전, 퇴사한 동료입니다.
회사 근처에 올 일이 생겼다며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합니다.
목소리가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생기발랄해 보이긴 하네요.
최고의 보약은 '퇴사'라는 말이 맞는가 싶기도 합니다.
점심을 먹으며 퇴사한 회사 동료가 명함을 한 장 내밉니다.
얼마 전만 해도 저와 같은 직책이었는데 이제는 '대표'라고 적혀 있네요.
"사업하는 거야? 인생 정말 한 순간이다."
"원래 구상하던 아이템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지 뭐."
"어때? 회사 다닐 때보다 나아?"
"이제 시작 단계인데 뭐. 그래도 지난달은 회사 다닐 때보다 월급이 3배 정도는 들어오더라."
너무 잘됐다며 축하해줬지만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나도 언제까지 회사만 다닐 수는 없을 텐데 용기를 한 번 내봐?'
사무실까지 걸어오며 여러 가지 잡념과 상상이 떠오릅니다.
분명히 입사할 때, 나와 별반 다를 것 없었던 동기도 퇴사하고 월급의 3배를 번다는데
나라고 못할 성 싶냐는 생각도 듭니다.
심지어 '업무 실력은 내가 더 낫지 않았나?' 하는 근자감도 샘솟습니다.
하지만 곧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만약에 실패하면? 이제 아이한테 한창 더 돈이 들어가야 할 때인데.'
사무실에 돌아와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참 마음이란 게 우스운 것 같습니다.
저는 분명 퇴사한 동료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업체에 보내는 이메일 작성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퇴사 생각은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를 받기 전까지 1도 하지 않았죠.
분명 그랬는데 전화를 받고 점심을 먹으면서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고민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고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도 제 생각도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제가 제 마음을 조종하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자신과 퇴사한 친구를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죠.
어제까지만 해도 퇴사에 대한 생각, 사업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고 있지 않다가
남이 잘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배가 아프고 부러운 마음이 생긴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간단하더군요.
제가 전화를 받기 전의 상황으로 한번 되돌아가 봤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처럼 오전 업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자리에 돌아왔다면
제가 지금처럼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고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