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해치려는 또 다른 마음
어떤 SNS를 보면
FWB와 같이 그것을 쉽게 추구하는 사람을
정말 많이,
무척 많이 볼 수 있다.
(FWB는 프랜드 위드 베네핏의 약자로
그것으로 이득을 취하는 친구 관계를 뜻한다
여기서 그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맞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그러니까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뜻이고,
은재 또한 그들과 같은 '뭐'였다는 소리다.
물론 은재도 인정한다.
그것은 행위의 주체들이 사랑하는 사이였을 때
더 빛을 발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우리는 그것을
'사랑을 나눈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은재는
꼭 그런 삶을 살지는 않았다.
꼭 사랑하는 사람 하고만 밤을 보내진 않았다.
(물론 낮일 때도 있었지만)
그리고 어떤 시기엔
너무나 그러고 싶었을 때가 있어서
그랬던 적도 있었다.
그러고 싶을 땐
SNS나 커뮤니티 어플들을 이용해
사람을 구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쉬웠다.
시간이 어떻든,
은재가 사는 곳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나
만날 중간이 가까운 사람은
늘 있었다.
그리고
은재의 경우엔 만나기 전에
대충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반갑게 만나서
몇 마디를 나누고
그 시간을 보냈다.
물론 매 경험이 깨끗하진 않았다.
스토킹을 당했던 적도 있었고,
뒤늦게 불안해 사후피임약을 처방 받았던 적도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은재의 머리를 툭 하고 쳤던 계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 SNS에서 그 단어를 본 일이었다.
자해성 섹스.
은재는 그 단어가 자신의 심연을 표현하는 한 구(句)임을 알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그토록 모르는 남자를 만나 그것을 했는지,
그때의 심정을,
그때의 마음을,
뭐라고 표현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은재가 모르는 남자가 필요했던 이유는
그것을 통해
자신을 파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나를 부숴줬으면 좋겠어.
죽고 싶은 마음을 시작으로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고통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를 버림으로써
모르는 누군가여도 좋으니
혼자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해성 그것.
그 표현이 맞았다.
은재는 타인의 힘을 빌려
자해를 한 것이었다.
그것을 안 순간,
은재는
원인불명의 통증에 대한 자신의 병명을 안 것처럼 기뻤으나
대신에
불미스러운 그것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게다가 그러고 싶은 욕망은
지금 자신이 누구와 만나고 있는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노력해야 했다.
더욱이 은재는 이런 문제로
누군가에게 몇 번의 상처를 준 적이 있으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이 이야기는 다른 화에 다루도록 하자)
물론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고 해도
그런 마음이 어느 순간 흔들려서
더 이상 망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의지를 가진 동물이니
도덕적인 의지로 그 욕구를 눌러보기로 한다.
그리고
새로운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은재는
다시 SNS에 그것을 추구하는 여러 사람들을 보며
어쩌면 이 사람들도
어딘가 아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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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눈에는 '뭐'만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