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불균형
이건 2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과 다름 없이
은재는
6-7개월 가량 만난 애인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창 달아오를 때여서
많은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은밀한 장소로 자리를 옮겨
단둘이 오순도순 시간을 죽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애인이 놀라서 물었다.
은재야
너 임신한 거 아니지?
은재는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고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애인을 쳐다봤다.
그러자 애인은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이런 게 나오지?
애인이 말한 '이런 것'은
바로 모유였다.
은재는 그제서 본인의 가슴을 쳐다봤다.
그리고 가볍게 눌러보았다.
그런데 힘 없이 뚝뚝..
하얀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애인은 급히 편의점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사왔다.
하지만 그 사이 인터넷으로
정확한 테스트 방법을 검색을 한 결과
아침에 일어나 가장 첫 소변으로 테스트를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하여
은재와 애인은 다음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애인의 친구들을 만나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만났고,
애인은 은재의 술을 대신 마시고
은재는 혹시 몰라 담배도 태우지 않았다.
그리고 얼큰하게 취한 우리는
노래방에 갔는데,
한 친구가 그 노래를 불렀다.
다이나믹 듀오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대충 노래를 설명하자면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한 두 남녀의 속사정을 표현한 노래다.
은재는 그 순간,
하느님의 존재를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 상황에 이 노래를?
이해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은재는 술에 취해 흔들리는 음정으로,
그리고 빵빵한 사운드로 그 노래를 들으며
손발이 벌벌 떨렸다.
당시
은재의 나이,
고작 스물넷이었다.
그런데 벌써 엄마가 되다니..
아니, 아직 완전히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니, 그래도 모유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 아닌가?
망했다, 망했어..
엄마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이런 저런 생각을 노래가 끝날 때까지 했다.
그리고
은재는 애인이 억지로 은재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애인은 앞만 보고 있었다.
은재는 애인이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마 은재와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은재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애인이지만
이 상황이 무서운 건 똑같을 테니까.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은재는 애인이 깨지 않게 일어나
몰래 불투명한 유리로 된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소변을 본 뒤에
5분..
피를 말리는 5분을 그 자세 그대로 기다렸다.
그리고 결과는
천운처럼 한 줄이었다.
은재는 화장실에서 나와
언제부터였는지
이미 깨어있는 애인에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줄이야.
그리고 애인은 다시 침대에 털썩, 하고 누웠다.
하지만 일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여전히 모유가 나오고 있었으니까.
은재는 자신의 가슴이 꼭
외계인의 그것처럼 느껴져서
곧바로 떼어내고 싶을 정도로 징그러웠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애인은 은재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래서 다음 날 오후에
혼자서 산부인과에 갔다.
은재는 애인에게 혼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몇 번 다른 이유로 산부인과에 가보았지만
은재는 그때마다 혼자이고 싶었다.
오히려 같이 가는 게 더 부담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혼자 산부인과에 들어가 대기했다.
여러 임산부들이 보였고,
은재는 오늘 아침에 한 테스트기가 불량일 수도 있으니
혹여나해서 불안해했다.
그리고 은재의 이름이 불렸다.
은재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굴욕 의자에 올라가 진찰을 받았고,
혹시 몰라 초음파 검사까지 했다.
은재는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하고
알 수 없는 표정의 산부인과 의사 앞에 앉았다.
다행히 임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도 원인을 모르는 듯 했다.
은재는 혹시 몰라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최근에 약을 변경했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것 때문이라고,
약 때문에 호르몬 불균형이 생겨
모유가 나온 것 같으니
정신과에 가서 약을 다시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은재는 곧장 정신과로 가서 약을 바꾸었고,
이내 모유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모유 사건은 종결.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지금은 그렇게 그 당시를 회상하지만
그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세상엔 참 별 일이 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