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예기치 않게 병원에 입원한
은재는
커튼을 끝까지 쳐놓고
병실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사흘까지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온몸에 퍼지는 몸살이 나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리고
열이 40도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흘, 나흘이 지나서는
몸살 기운도 가시고, 열도 완전히 떨어져서
몸 상태가 괜찮아졌고
순리처럼 불행하게 되었다.
불행에 이유를 찾자면
몇 가지가 있다.
첫 째는
은재가 입원한 시기가 추석과 겹쳤고,
이번 추석은 주중에 쉬는 날이 길어서
은재는 퇴원할 때까지
업무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은재는 불안증세가 높은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게다가 쉬는 작업을 잘 하지 못하는 성인 ADHD여서
일을 오래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타고난 불행을 연상하는 체질 때문에
업무 연락이 오지 않을 때
혹시 잘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둘 째는
열심히 준비한 투고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은재는 입원 기간 동안 몇 차례의 회신을 받았지만,
한 번도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건 어떤 사람이라도 괴롭지 않을까?
은재는 역시 난 크게 될 사람이 아닌가, 하면서
과격하게 작아졌다.
셋 째는
투고 다음으로 준비 중이었던 웹소설을
병원에서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게 차분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은재는 스스로 웹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전혀 빠삭하지 않다는 헛점을 발견했다.
특히 웹소설을 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좋은 웹소설을 쓰겠다는 거야?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던지면 그대로 되돌려 받아서는
크게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1화만 몇 차례 고치고, 고치고…
그렇게 작업이 나아가지 못했다.
따라서 매일이 최악의 하루였다.
정말 병원이 감옥 같았다.
물론
병원 커튼을 닫아 사방을 막아놓은 것은 은재 자신인 것처럼
위의 세 가지 이유도
은재 자신이 안정적일 수 있는 수단들을 거부하고
꿈을 위해 하기로 결정한 것들에서 기인한 것들이니
그 감옥은 은재 자신이 스스로 만든 감옥이라는 걸
은재도 모르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은재는 이런 이유들을 담담히 받아드리고
다시 한 번 꿈을 이루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는 게
효율적이고, 건강한 방법이겠지만.
은재는 너무 우울, 불안, 좌절과 같은
푸름들과 친했다.
그래서 은재는 입원한 기간 동안 너무 쉽게
푸름이 연 파티에 몇 번이고 초대 당했고,
이끌렸으며,
그 파티에서 늘 그랬듯 춤도 추지 않았다.
그럼 무엇을 했냐면
은재는 저번과 똑같이 일기를 썼다.
불행하면 길어지는 일기를.
은재는 결국 퇴원까지 스물두 장의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들을 전부 밝힐 순 없지만
은재는 일기에서 반복해서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
떻
게
살
아
야
하
는
가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모든 일기에 이런 사춘기 같은 질문을 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애매한 재능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재는 자신의 재능이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애매한 재능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눈에 띄었겠지,
어떻게든 내 글을 출판했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정보의 장인 것도 한몫했다.
너무 쉽게 작가가 된 영웅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어린 나이에 출판하거나 등단한 내용이었고,
은재는 그런 것들을 보면 부럽고 질투했다.
못나게도.
더군다나 지금은
옛날처럼 글을 휘리릭 쓰는 것도 아니니까.
지금이 포기 해야 할 그때가 아닌가, 싶어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사실 응급실에 왔을 때,
은재는 입원뿐만 아니라 의사가 권한 검사들도 거부했는데
그건 은재의 통장 잔고를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은재는 지금 돈에 쪼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꿈을 좇는다고?
너무 쓸데없이 낭만적인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은재는 병실에서
무교이면서도 하느님이 나타나
"너의 길은 그 길이 아니다"
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 순간만큼은 포기하라는 말에
기겁하지 않고 포기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뭐,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없으니까.
은재는 결국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에 한글 파일을 켜놓고
아주 잠깐 그 분을 기다리다가,
결국 일기장을 펼쳐서 다시 그 질문을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이 병실을 쓰는 환자 한 명이
병실에 불을 모조리 꺼서
등 뒤에 작은 형광등 하나에 의존해서는
어쩌면 지금은 절대 알 수 없는 답을 찾아
내내 쓰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