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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문을 닫고 나온 날

마지막 근무와 대답 없는 아침

by 지화


2025년, 글을 쓰기 위해 메모장과 사진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사장님께 보냈던 문자, 동료들과 손님들에게 받았던 메시지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퇴사를 이야기한 뒤로는 대부분 연락을 문자로 주고받았다. 주변에서는 기록이 남는 쪽이 낫다고 했고,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퇴직 얘기를 꺼냈을 땐, 사장님도 알겠다고 했다. 퇴직금도 챙겨주겠다는 말에 완전히 믿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퇴직금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내가 지금 돈이 어디 있냐!”라며 언성을 높였다. 돈이 생기면 그때 주겠다는 말뿐이었다. 실망스러웠고, 그즈음부터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몇 년을 함께 일한 사장이었다. 그동안의 관계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도 어려웠다. 사장님은 계속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그 사이 사업장을 확장하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일하는 사람에게 줄 돈은 없다고 하면서 다른 데에는 돈을 쓰는 모습이 그제야 낯설게 느껴졌다. 마음속 어딘가에 선이 하나 그어졌다. 내가 뭔가를 더 바라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것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 무렵부터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를 고민했다. 완전히 낯선 곳보다는, 그래도 아는 얼굴이 있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여동생처럼 지내던 후배가 종종 내게 말했다.
“언니, 여기 와서 쉬었다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잖아.”

그 말은 단순한 제안이었지만, 내게는 방향이 되어 주었다. 낯선 곳에서 무너지는 것보다는, 익숙한 얼굴이 있는 곳에서라도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사를 마쳤다. 하지만 전주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야간 근무가 남아 있었고, 퇴직금 문제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전주에서의 마지막 야간 근무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근무 마지막 날이 다가와도 사장님은 끝내 야간 근무자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친구에게 일을 맡기기로 했다.

그분은 내가 그만두는 날 오후에 편의점 C로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동시에 내가 살던 자취방도 그가 계약하기로 했다. 편의점과 자취방, 두 자리를 한 사람이 이어받는 셈이었다.

나는 사장님에게 이사는 이미 끝냈지만 마지막 야간 근무를 마치고 씻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오후에 자취방에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2020년 1월 1일, 떠나는 그날 아침. 야간 근무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는데, 집 안에는 이미 그 친구분이 들어와 있었다.

널브러진 짐을 보고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참으며 물었다.
“사장님 연락 못 받으셨어요?”

내가 묻자, 그분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쪽은 편의점 근무 끝나고 바로 가신 줄 알았는데요? 사장님한테 그렇게 들었어요.”

나는 씻지도 못한 채 남은 짐 몇 개만 챙겨 나왔다. 문자 한 통을 보냈지만, 사장님은 끝까지 답이 없었다. 결국 가방과 캐리어만 들고 전주 터미널로 향했다.


몇 년을 함께했던 여사장은 끝내 답장한 줄조차 남기지 않았다.
허탈함과 실망만이 남았고, 그렇게 전주를 떠났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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