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흔들린 발걸음

신고의 자리, 그리고 다시 떠난 길

by 지화


광주로 옮겼지만, 전주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퇴직금 문제로 결국 노동청에 신고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애초에 신고할 생각으로 준비했던 게 아니었기에 증거는 많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손으로 적어온 출퇴근 기록이 있었지만 일부만 남아 있었고, 사진으로 남겨둔 것도 드물었다.
월급 입금 내역과 남아 있던 기록 몇 장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신고서를 제출한 뒤, 사장님도 곧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통화와 문자가 이어졌고, 대화는 점점 험한 말들로 흐르곤 했다.
“돈도 없는데 뭘 바라냐.”
“퇴직금은 네가 참으면 되는 거지.”
“다시 보이면 가만 안 둔다.”
그 말들이 문자와 전화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때는 그 말들이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는 걸, 다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료들과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건장한 남자 꼭 데리고 가. 혼자 가지 마.”

나 역시 불안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제일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사친에게 조심스레 부탁을 했다.
그는 흔쾌히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담당자분은 성실한 분이었다. 사정을 잘 들어주었고, 내가 삼자대면은 어렵다고 말했을 때도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절차상의 착오가 있었는지, 결국 나는 사장님과 마주하게 됐다.

출석 당일, 나는 노동청 건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손에 쥔 서류가 축축해질 만큼 손에 땀이 났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사장님은 이미 앉아 있었고, 눈빛은 차가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몰아붙였다.
담당자가 중간중간 제지했지만, 그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통화 소리가 들려왔고, 수화기 너머로 위협적인 말이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남자 점장과 여사장의 남편이었다.
나는 옆에 앉아 있었지만 직접 마주한 건 아니었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들뿐이었다.
특히 남편은 사회적으로 위치가 있는 사람이어서인지, 처음에는 강하게 몰아붙이다가도 결국에는 합의를 권유하는 쪽으로 흐르는 듯했다.
사실 근무하는 내내 남편은 아내가 사업을 무리하게 벌이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편의점도, 다른 일들도 그가 바라보는 눈에는 늘 불편한 판처럼 보였던 것 같다.

나는 몸이 굳은 채로 준비해 간 자료를 꺼냈다.
몇 년 동안 손으로 써온 출퇴근 기록 중 일부와 월급 입금 내역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받아야 할 금액을 설명했고, 담당자가 내 말을 차분히 정리해 주었다.
마지막에는 “이제 다 끝났으니 가셔도 된다”라고 했다.

일어서려는 순간, 사장님이 나를 붙잡으려 했고, 담당자가 조용히 막아 주었다.
그때야 비로소 ‘지금이 나갈 때’라는 신호를 느꼈다.
남사친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을 때, 온몸에 힘이 빠졌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내 상황을 모를 거라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허전했다.
몸은 무거웠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끝났다는 감각과 함께, 다시 전주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만이 뚜렷했다.

신고는 끝났지만, 연락은 며칠 더 이어졌다.
현장에서 바로 돈을 받았는지, 며칠 뒤에 받았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흐릿하다.
다만 출석 이후에도 사장님과 ‘합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건 분명하다.
신고 과정은 2019년 12월 말부터 2020년 2월 초까지 이어졌다.
애초에 신고할 생각으로 준비했던 게 아니라서 증거가 부족했다.
몇 년 동안 손으로 적어온 출퇴근 기록이 있었지만 일부만 남아 있었고, 사진으로 찍어 둔 것도 많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더 꼼꼼히 기록해 두지 못한 게 아쉽다.

신고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게 정리된 건 아니었다.
관계는 끊겼지만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 뒤로도 한동안 그날의 문자, 긴장감, 위협적인 말들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경험은 내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 순간이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워본 적이 없던 내가 아주 작게나마 방향을 바꾼 것이다.
혼자였다면 도저히 버티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단골손님들, 그리고 곁에서 응원해 준 몇몇 지인들 덕분에 끝까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말들이, 그 마음들이 그때의 나를 크게 지탱해 주었다.

그 무렵 나는, 더 늦기 전에 가지고 있는 아이템으로 본격적으로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궁핍했다. 준비를 위한 자금조차 빠듯했고, 당장 생활비도 필요했다.
결국 구직 공고를 검색했고, 집 앞 마트에서 야간 근무자를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나는 또다시 익숙한 자리, 알바라는 선택을 했다.

2월, 자취방 근처 마트에서 야간 근무를 시작했다.
인수인계를 받으며 전임자로부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들었다.
생수 묶음은 외부에 있으니 손님이 직접 가져가게 할 것,
위험하니 웬만하면 아침 교대까지는 카운터에서 나오지 말 것.

며칠 동안은 큰 문제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어느 날, 단골이라고 말하던 중년 남성이 생수를 찾았다.
나는 배운 대로밖에 있는 생수 묶음을 안내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죄송하다”며 내가 직접 생수를 가져다 드렸지만, 그는 “너 두고 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불안이 크게 남았다.

다음 날 여사장님은 단골을 잃게 생겼다며 나를 탓했다.
“너하고 신뢰관계가 깨졌다”는 말까지 했다.
면접 때는 카운터만 지키면 된다고 했고, 인수인계 때도 매대 정리는 아침 교대자가 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듣지 못했던 청소 이야기를 꺼내며 새로운 조건들을 덧붙였다.

나는 그동안 손님들과 큰 문제없이 지내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장님 눈에는 내가 융통성 없이 규칙만 고집하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도 끝내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사장님은
“이 시국에 너 같은 애 때문에 단골을 더 잃게 생겼다”,
“차라리 새벽에 장사 안 하는 게 낫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그날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 후 오후 근무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야간 손님이 없어서 문 닫는다는 말은 있었지만, 여사장님이 말만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남편인 남사장님도 진상 많다고 하시잖아요. 언니도 겪어봐서 알잖아요?”
그리고 덧붙였다.
“남사장님이 술 취해서 진상짓하는 사람은 귀신 쓰인 거라며 상대하지 말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었어요.
언니도 들어서 알잖아요? 그리고 전 야간근무자한테 인수인계를 그렇게 받은 거잖아요?
그냥 아무 말하지 말고 버티세요.”

나는 그대로 조용히 버텼다.
하지만 버틴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결과는 해고였다.
신입이었고 수습 기간 중이라 내쫓기도 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그 일을 마무리했다.
조금이라도 덜 흔들리는 곳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시골로 향했다.


keyword
이전 06화18화 문을 닫고 나온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