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듣지 않았지만, 나는 말했다
코로나19 시기, 나는 시골에 도착했다. 집안 형편상 오래 쉴 수는 없었고, 곧바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시골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일자리는 계속 들어왔다. 문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처음 일한 곳은 작은 잡화점이었다. 아침 파트타임으로 한두 달을 일했다. 몇 년 동안은 늘 새벽에 출근해서 해가 뜨면 퇴근하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오랜만에 남들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낮에 일하는 게 낯설기도 했다. 어느 날은 태양 아래에서 제품 검수를 하다가 문득 '땡'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아침 햇살 아래에 선 게 정말 오랜만이구나.”
몸도 달라져 있었다. 오후에는 졸음이 쏟아졌고, 퇴근하고 나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읍내에 있는 대형마트에 취업하게 되었다. 수습 기간을 지나면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조건이었다.
입사 전부터 좋지 않은 소문은 들었다. 여자 팀장님이 실세인데 성격이 굉장히 강하고, 교육 방식이 강압적이라는 이야기였다. 여자 직원들에게는 말도 행동도 거칠고, 남자 직원들에게는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말도 있었다. 손님들 앞에서도 실수가 있으면 큰 소리로 혼을 내고,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그걸 애정 표현이라고 했다.
과장님은 팀장님이랑 가까운 사이였고, 그래서인지 갈등이 생기면 팀장님 편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 카운터 오전 근무자 언니는 팀장님과 동갑이었고, 입사 초기에 팀장님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나를 계기로 절친이 되었다. 코너에 있던 다른 직원 한 분은 원래 카운터 근무자였지만, 팀장님 때문에 자리를 옮긴 분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힘들면 언제든 이야기하라”라고 먼저 말해줬다.
이런 분위기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단련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있었다. 어떻게든 해보자 싶었다. 하지만 추석 즈음, 마트 사장님이 추석 전에 힘내자 하면서 전체 회식을 열었고, 그 회식을 계기로 나는 여자들 사이에서 혼자가 되었다.
다른 동료들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다.
“팀장님은 원래 저래. 다들 욕하면서 그만둬. 위에 말해도 바뀌지 않아.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시골이라 갈 곳이 없어서 그냥 참는 거야.”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하고 싶은 말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고, 점장님에게 조심스레 개선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변은 “노력은 해보겠지만, 크게 바뀌긴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었다.
다음 날, 팀장님이 직원식당으로 나를 불렀다.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불만이 뭐냐고 다그쳤다. 나는 입을 열었고, 팀장님은 말을 다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남자한테도 욕해. 이게 내 방식이야. 난 잘못한 거 없어.”
유일하게 인정한 건, 손님 앞에서 큰 소리로 혼낸 것 하나뿐이었다. 그 순간, 여기서 오래 일하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냥 상반기까지만 일하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나는 억울하고 화가 나서 울었다.
나는 감정이 격해지면 우는 편이었다. 그걸 고치려고 손등을 꼬집고, 입술을 깨물고, 팔목을 잡기도 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그날도 “정신 차려” 되뇌며 손등을 꼬집었지만, 결국 울고 말았다.
다음 날, 팀장님, 과장님, 나, 그리고 나랑 같은 야간시간에 근무하는 언니까지 불러낸 자리가 있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진 자리처럼 보였다. 팀장님은 손가락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싸늘한 표정의 관리자들은 말없이 그 곁을 지켰다.
그 순간, 가장 선명하게 각인된 건 팀장님의 손끝이었다. 선명한 매니큐어 색깔이 번뜩였고, 그 손이 나를 가리킬 때마다 낯선 위압감이 더해졌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만큼 그 손끝은 날카로웠다.
일방적인 대화가 이어졌고, 나와 동료 언니는 대화를 포기했다. 나는 자리를 떴고, 언니는 남아서 끝까지 이야기하고 나왔다.
언니는 나에게 와서 말했다. 과장님이 "너 이상한 년이라고, 너랑 대화하지 말래. 너 해고시킬 거라고 하더라." 언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 뒤로는 노골적인 왕따가 시작되었다.
관리자도, 점장도 해본 적 있고, 선배 노릇도 많이 해봤지만, 이런 상황은 어이가 없었다. 갑질과 텃세가 이렇게 작동하는구나 실감했다.
마트 관리자들의 말과 행동들은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나는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체질이었던 나는 빠르게 몸무게가 줄고 건강도 나빠졌다. 그래서 남은 기간만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전환했다.
직원들에게 건강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마저도 설전이 되었다.
계산대 오전 언니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계기로 팀장님과 절친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님은 나에게 조용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오는 손님, 직원 전부 내 편이야. 너 편은 없어. 내 얘기하면 다 내 귀에 들어와. 너 그런 식으로 살면 인생 망한다.”
그건 반협박처럼 들렸다.
나는 코너 직원에게 의지했다. 힘들면 언제든 말하라고 해준 분이었다. 동료 언니는 이미 퇴사한 상태였고, 그분밖엔 기댈 사람이 없었다. 결국 팀장님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그대로 팀장님에게 전달되었고, 셋이서 삼자대면을 하게 됐다.
그날 이후, 팀장님은 어떤 말도 듣지 않았고,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
보복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계속됐다. 처음으로 코너 상품 관련 컴플레인이 생겼고, 그날은 손님에게 욕까지 들었다. 카운터엔 나 혼자였고, 배달 주문은 밀렸으며, 새로 온 야간 직원은 한 시간 만에 퇴근해 버렸다. 과장님은 전화로 “돈이 없어서 사람을 못 쓴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모든 게 터졌고 의욕을 상실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게 내 철칙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기억 속 팀장님은 마지막까지 이렇게 말했다.
“일할 사람은 많아.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
그 시간을 버틴 내가 참 기특했다.
나도 한때는 돈에 목숨 걸고 일한 적이 있다. 버텨야만 했고, 그래서 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잃은 건강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회복은 더디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리 자고 쉬어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버릇처럼 일만 좇다가 멈춰 보니, 어느새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누굴 만나든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 스스로를 채근하고,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그럴수록 내가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흐릿해졌고, 결국엔 나라는 사람 자체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이제는,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다시 정해야 한다고.
주변에서는 말했다. “그 나이에 뭘 하려고 그래.” “그냥 가만히 있어.”
하지만 나는 안다. 끝에 서 본 사람만이, 비로소 보게 되는 게 있다는 걸.
그래서 더는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지켜야 할 건,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순서라는 걸.
어떤 말들은 흘려보냈다. 그 말들이 나를 살피기보다는, 멈추게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