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발걸음

덩어리 같은 존재

by 지화


전주에 내려올 때는 친구와 함께였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고, 나는 곧 혼자가 되었다. 연고 하나 없는 도시에서 가장 먼저 필요했던 건 짐을 둘 곳과 몸을 뉘일 방이었다. 급하게 계약한 원룸은 허술했지만, 당장은 몸을 뉘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원룸은 내가 투잡을 뛰던 두 알바터의 중간쯤에 있었다. 먹자골목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조용해지는 공원이 나타났고, 그 길을 지나면 곧바로 건물이 보였다. 낮에는 그 대비가 낯설었고, 새벽에는 그 적막이 더 크게 다가왔다.

문을 열자마자 하수구 냄새가 밀려왔고, 구석에는 벌레가 기어 다녔다. 싱크대와 작은 화장실, 정면의 방 하나. 구조는 단순했지만, 들어서는 순간부터 편안함보다 눅눅함이 먼저 스며들었다. 억지로 샤워를 하고 이불에 누워도 금세 소음이 따라 들어왔다. 벽 하나를 두는 게 무의미할 만큼 방은 늘 시끄러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거슬린 건 두 가지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세탁기 소리, 그리고 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 다른 소리가 잦아들 때마다 이 두 소리만 또렷하게 남았고, 반복될수록 더 크게 들렸다.

원룸 주변은 늘 어수선했다. 특히 새벽에 공원을 지나갈 때면 인기척이 거의 없어 더 무서웠다. 불 꺼진 놀이터, 삐걱대는 그네, 가로등 불빛에 드리운 그림자들이 긴장을 풀지 못하게 했다. 그날도 피곤한 몸을 끌며 그 길을 지나고 있었다.

종일 퍼붓던 비가 잦아들고, 안개가 내려앉은 새벽이었다. 공원을 가로지르는데, 흐느낌이 뚝뚝 끊기며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가로등 불빛이 겹쳐 비추는 놀이터가 보였다.

그네 위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몸은 축 늘어져 있었고, 젖은 긴 머리카락은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주변은 어두웠지만, 불빛이 그네와 흰 옷만 또렷하게 드러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흐느낌이 겹쳐 이상한 장면이 되었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오히려 그 모습만 더 선명해졌다. 결국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원룸까지 달려갔다.

며칠 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술집이 많은 동네라 공원을 지나 원룸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그런 장면을 자주 본다고 했다. 술에 취한 남녀가 실연을 견디지 못하고 공원에 앉아 흐느낀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상관없다는 듯, 그 장면은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자취방을 고를 때 값이나 위치를 먼저 보지만, 나는 그날 이후 집까지 이어지는 길의 공기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낮의 풍경은 잊히지만, 새벽의 공기는 잊히지 않는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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