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늦여름에서 겨울, 연극 연출 전공
이상한 일이었다. 휴학을 했고, 수업은 제작반과 연출실기 딱 두 개밖에 청강하지 않는데도 종일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매일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음향, 소품, 작가, 배우들이 줄줄이 연출인 나와 상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 회의를 하고 나면 수업에 가서 교수님께 탈탈 털리고 모든 것이 뒤집어 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몇십 년 연출을 해오신 교수님 눈에 학생 연출이 얼마나 답답했을까만은 나로서도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한번은 수업이 끝나고 교직원 식당까지 따라갔다. 연출 교수님, 무대 교수님이 한 자리에 계셨다. 나는 밥도 뜨지 않고 교수님들 앞에 앉았다. 두 분 교수님들께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토로했다. 교수님은 무신경하게 계속 식사를 이어가셨지만, 내가 떠날 생각이 없어보였는지 단서가 담긴 몇 마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터덜터덜 학교에서 내려왔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교수님이 매번 솔루션을 내놓으실 때마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연출이 될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교수님은 유명한 작가셨으니 모든 요소가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었고, 무대 언어를 유연하게 사용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탄하거나 뻔히 질 싸움을 걸어보는 것뿐이었다. 괜한 짓이었다. 무대 위 논리 싸움에서 내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괜히 작가에게 대본 수정을 닦달하기도 했다. 글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연출적인 요소도 이야기에 큰 부분이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
나중에는 점점 자신이 없어져서 스텝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연출적으로 확실한 비전이 없으니 회의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무대 선배와는 매번 새로 만드는 기분으로 밤새 회의한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어리석었던 일이 없다. 회의는 매번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연극처럼 다양한 분야가 모여 만드는 종합예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스텝들도 나도 ‘공동창작’이라는 말 속에 매몰되어 무대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논쟁만 이어갔다.
배우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습실에서 연극의 틀이나 톤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니, 그들은 많이 지쳐있었다. 차라리 연습할 부분이 없는 배우들은 돌아가며 쉬게끔 만들어주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 작품을 할 때 배우 쪽에서도 매일 연습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하는 게 나은 방향인지 모르는 채 서로의 옷깃만 붙잡고 모여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방향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늘 괴로웠다.
그 무렵 나는 매일 밤부터 아침까지 연습하고, 아침에 집으로 가기 전에 편의점 음식을 사먹었다.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데다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받아 피부에 가려움증이 생겼다. 이후 몇 개월 동안 알러지 약을 먹었다. 지금도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래도 거의 증상이 많이 나아졌다. 당시에는 가려움증 따위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하루하루가 바빴다. 정신을 차려보니 공연이 올라가고 있었다.
공연은 생각보다 좋았다.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무대 위에 구현되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했다. 물론 나를 제외한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어서였다. 배우와 스텝들의 고생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 잠적하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연출을 부탁했던 작가 친구가 나를 더이상 보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물론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지금도 그 친구와는 잘 만나고 있다.
연출을 하고 나서, 영화 <위플래시>를 보았다. 왠지 나를 지도해주셨던 교수님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심하게는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교수님께서 우리를 조금 더 친절하고 세세하게 지도해주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고작해야 20대 초반, 연극의 경험도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학교로 돌아간다면 나는 하나의 프로덕션을 맡는 일 따위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 능력에 과분한 일이기도 하고, 구성원들이 소통에 서툴면 상처받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연출했던 그 시기의 기억은 확실히 아프다. 하나같이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이렇게 미안한 마음, 후회, 섭섭한 감정들이 뒤엉켜 구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