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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진 Feb 23. 2022

생방송의 무게 上

2010년 가을에서 겨울, 학교 방송국 앵커



  학교 방송국에서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라디오 방송이 송출되었다. 매 방송 시간은 20분. 방송 시작 3초 전 PD가 큐 싸인을 주면 엔지니어가 버튼을 눌렀고, LP판이 한 바퀴 돌아 정확히 정시에 콜사인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PD의 싸인에 맞춰 아나운서가 멘트를 했다. “젊음과 지성의 메아리. MCDS 방송국입니다.”


  지금까지도 학교 어느 곳에서 우리 방송이 들렸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때때로 선배들은 학교 기재실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교내 스피커와 연결되어있는 기계 버튼이 거의 다 꺼져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재실에서는 민원이 들어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수업 시간과 겹치지도 않는 시간에 누가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었던 것일까.


  그치만 나는 어떻든 상관없었다. 솔직히 선배들이 그런 이야기에 열변을 토할 때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처음 방송국을 들어간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학교 내에 우리를 제외하면 학내 방송을 듣는 사람도, 방송국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팟캐스트도 안 듣는 세상에 누가 운동장에서나 흘러나오는 학내 방송을 듣고 있겠는가.


  방송국 생활의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도 매년 예산이 배정되니 그에 맞게 지출하면 그만인 그저 그런 일들 중 하나였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방송국 활동을 하면 반액 장학금이 나왔다. 시류에 한참 뒤떨어진 방송 시스템이나 그에 반해 쓸데없이 세세하고 엄격한 규율, 윗 기수 선배들의 과도한 간섭도 장학금으로 대략 상쇄되었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내가 방송국을 나가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시 나는 십 구년을 살아온 강원도의 환경과는 180도 다른 서울 생활에 버거워하고 있었다. 할머니와도 수시로 부딪혔고, 나 자신을 초라하다고 여겨 거리에만 나가도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벽보를 보고 방송국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모든 이가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주었고, 수업이 없는 사람은 어김없이 방송국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특히 동기들은 거의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방송국 생활을 견뎠다.


  혹독했던 1학년 여름방학 교육을 마치고, 나는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해야 하는데 인천 할머니 집에서 통학을 하자니 막막했다. 한 학기 내내 선배들의 아침 방송을 참관하기는 했지만, PD혹은 앵커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혹시라도 내가 늦으면 방송은 그대로 펑크가 나는 거였다. 여름이라 시기가 애매해서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원룸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하숙집을 몇 개 보러 다녔는데, 비싼 것은 둘째치고 마음이 끌리지가 않았다. 평소에는 각자 방에서만 지내다 밥 먹을 때만 마주쳐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


  그러던 중, 길을 걷다 전봇대에 붙은 작은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잠만 자는 방, 10만원, 000-000-0000’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그 집을 보러 갔다. 2층짜리 양옥집이었고, 1층에는 주인이 거주하고 2층에 있는 방 세 개에 각기 다른 학생들이 살고 있었다. 욕실과 화장실, 세탁기 및 건조대, 전자렌지와 일회용 버너는 공용. 문제는 2인실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방은 꽤 넓었고, 화장대와 싱글 매트리스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이었다. 위치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학교에서 뛰면 5분, 걸으면 1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나는 일단 보증금 없이 월 10만원이라는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당장 2학기 방송이 코앞이었기 때문에 물불 가릴 것이 없었다. 방송국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도 경기도에서 통학을 하고 있었고, 평소 집에서 나와 살고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 한 달에 10만원에 자취할 수 있으면 할래?”

  “한 달에 10만원?”

  “응. 내가 지금 보러왔는데, 꽤 괜찮아. 2인실 하나 남았는데 우리 같이 살까?”

  “난 좋아.”

  “진짜? 고민 안 해봐도 돼?”

  “어. 나 할래.”


  그렇게 동기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동기는 먼저 거주를 결정짓고 나서야 집을 보러 갔다. 그때까지만해도 둘 다 자취 경험이 없기도 했고, 학교 부근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워 다른 것들은 어떻든 별로 상관없었다. 우리는 조촐한 짐을 꾸려 그 방에 모였고, 앞으로 잘 살아보자며 축배를 들었다. 학교 앞에 살게 되었으니 잠은 좀 더 잘 수 있겠구나, 달콤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헛된 꿈인 줄도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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