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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진 Feb 15. 2022

스무 살의 이중생활 下

2010년 봄에서 여름, 날카로운 주점 알바의 추억


  교육이 끝나고 나서 우리 기수는 전부 스튜디오에 모였다. 열려있는 창문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블라인드가 계속해서 부딪혔다. 방송국을 나가겠다는 동기 두 명의 의지는 생각보다 강했다. 이유는 단 하나. 선배들의 고압적인 태도를 더이상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부분이야말로 모두가 똑같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스튜디오에는 때때로 침묵이 흘렀다. 결국 누가 먼저 터지느냐 하는 문제였다. 사실, 그 무렵 우리끼리 있을 때 건네는 위로가 있었다.


  “2학기부터는 우리끼리 방송하니까, 조금만 참자.”


  2학기부터는 선배들이 졸업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에 후배들이 모든 방송을 진행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 기수는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툭하면 찾아와 술까지 대접을 받아야만 돌아가곤했던 졸업한 선배들, 매번 꼬투리를 잡아 우리 기수를 혼냈던 2학년 선배들을 깡그리 무시할 계획이었다. 우리 기수끼리 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여덟 명이 각기 성향은 달랐지만 일종의 전우애로 똘똘 뭉쳐있었다. 한 명이라도 방송국을 그만두게 되면 남은 사람들이 어떤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누구 하나 섣불리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두 명이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너희들 마음은 이해하는데,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난 도저히 안 되겠어.”

  “곧 우리끼리 남잖아.”

  “그것때문에 지금까지 참은거야. 근데 선배들 얼굴 하루도 더 못 보겠어.”


  스튜디오에서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도돌이표였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학교 앞에 있는 주점 <지짐이>로 향하면서, 나는 내가 알바하고 있던 인천 <지짐이>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오늘 학교에 일이 생겨 아무래도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내용으로. 사장님께서는 나와 같이 알바하던 언니가 일하기 불편한 상태이니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하셨다. 그 언니가 내성발톱 때문에 홀서빙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있었다. 상황을 보고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기로 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날이라도 잡았다는 듯 동기들은 그간 쌓였던 설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가겠다고 했던 두 명도 다른 동기들의 고충을 들으며 마음을 조금씩 푸는 것 같았다. 속상해서 한 잔, 공감하면서 한 잔.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다들 취기가 얼큰하게 올랐다. 우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완전히 나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찌되었든 나는 일을 계속 할 수 없으니 후임자를 구하시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그 이야기를 하고도 이미 일주일 이상은 지났으니, 나도 할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 되어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꾸고 가방 깊숙이 넣었다. 그 때 누군가 이야기했다.


  “우리 한강 갈래?”


  여기서부터는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택시를 타고있었고, 다음 순간에는 편의점에서 은박 돗자리를 사고 있었다. 여름이었지만 새벽녘 한강공원은 꽤나 추웠다. 안개가 끼어있었다. 우리는 작은 돗자리 안에 옹기종기 앉아 벌벌 떨었다. 다들 취기가 올라 별 거 아닌 일에도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동기들과 벌인 미친 짓이 꽤나 즐거웠기 때문일까, 방송국을 나가겠다고 했던 두 명은 그때쯤 완전히 마음을 바꾼 상태였다. 알바때문에 계속 마음이 무거웠던 나는 한 쪽이라도 성과가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삼켰다. 첫 차 시간이 되어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나의 지옥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핸드폰을 켜 보니 가관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몇 십통, 장문의 문자가 두 통 와 있었다. 문자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성발톱 수술을 한 언니가 오픈부터 마감까지 절뚝거리며 일을 했고, 니가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일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못한 내용도 아닌데 왜 이토록 마음이 아픈 것일까, 생각하면서. 이 모든 상황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그런데 또 어떤 이유인지 억울한 감정이 울컥울컥 치밀었다. 그렇다고 눈물이 흘린 것은 아니었다. 마치 수감이 확정된 죄수처럼 모든 것에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할까.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알바를 나가지 않았고, 그쪽에서도 더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토록 마음이 무겁더니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죄책감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동기 두 명의 탈퇴 시도가 있고난 후 선배들의 기세도 한 풀 꺾여 학교 생활은 더욱 할 만 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 동기들과의 사이는 더욱 더 끈끈해졌다. 동기들은 내가 더이상 알바를 나가지 않게 된 것에 대해 잘 됐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고 돈은 다 받았느냐고 물었다.


  사실, 월급날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나는 거의 한 달치에 가까운 알바비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역시 월급날이 한참 지나도록 알바비는 입금되지 않았다. 내가 사장이라도 그 돈을 쉽게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저지른 과오가 있었기때문에 나는 못 받은 알바비에 대해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오히려 왜 그 돈을 포기하냐고 성화였다. 나는 매일 저녁 인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오늘 가볼까. 눈 딱 감고 한 번 해 볼까.’ 고민했다. 내가 알바했던 주점은 할머니 집에 도착하기 직전 정류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에 가려면 원래 내려야하는 곳보다 한 정류장 먼저 내려야했다. 당연히 나는 매번 그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하고 지나쳤다. 창 밖으로 물끄러미 그 주점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매일 주점을 지나쳐간지 이 주쯤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태풍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인천가는 광역 버스를 탔는데 평소와 다르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가 인천에 들어서고, 멀리서 주점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굵은 빗줄기 너머로 이제 막 불이 켜진 주점을 바라보았다. 나는 하차벨을 눌렀다. 주점 안에는 새로 뽑은 것으로 보이는 키 큰 남자 알바생 두 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버스 뒷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버스에서 내려 주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남자 알바생 한 명이 아직 오픈 전이라고 안내를 했다. 나는 사장님을 뵈러 왔다고 했고, 남자 알바생이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장님이 주방 문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나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 어닝이 쳐진 테라스에 앉아 유리 너머로 주점을 들여다 보았다. 사장님이 주방에서 나와 손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사장님은 마치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돈통을 열어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오셨다. 내 앞에 사장님이 앉자마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도저히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네가 한 짓은 네가 제일 잘 알겠지.”


  커다란 빗소리를 뚫고 나오는 사장님의 성난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허벅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부터는 말도 나오지 않을만큼 게속해서 울었다. 좀체 눈물이 없는 성격인데 나조차 의아할 정도로 눈물이 났다. 네 입으로 면접 때 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지. 나는 못 할 거라고 했고. 그런데 네가 하겠다고 해서 나는 너를 믿었어. 결국 어떻게 됐니. 너 한 명이 책임감없이 행동함으로 인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본 줄 아니. 사장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날아와 꽂히는 것 같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마지막 대사는 확실히 기억이 난다.


  “어디가서 이렇게 행동하지 마라. 네가 스무살이니까 내가 이 정도로 끝내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사장님은 테이블 위에 봉투를 올려두고 다시 주점 안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아 얼마간 더 울다가 봉투를 열어보았다. 내가 다이어리에 했던 기록으로 계산한 금액보다 10만원이 적었다. 나는 깜짝 놀라 주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자 알바생 두 명이 나를 보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사장님은 주방으로 들어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허탈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였구나. 내가 절대 말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사장님은 알고 계셨구나. 나는 봉투를 가방에 넣고, 우산을 펼쳐 쏟아지는 폭우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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