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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Jan 19. 2023

당신의 오늘은 무탈했나요?

당신의 오늘은 무탈했나요? 


나는 오늘 유난히 몸이 무거웠어요. 직장인의 의무를 뒤로 한 채,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려 덮고 늦은 오후까지 자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연신 울려대는 알람에 마지못해 일어나, 차디찬 물에 몸을 맡겨 졸음을 멀리 쫓아냈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더 굼뜬 손놀림으로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고르고, 집을 나섰어요. 


두툼한 패딩을 입었는데도 오늘 날씨는 왜 이렇게 추운 것일까요? 자꾸만 뒷걸음질 쳐서 집으로 가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누르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의 발걸음의 끝엔 회사가 있겠지요.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오늘도 어김없이 컴퓨터를 켜고 할 일들을 정리합니다. 엑셀 파일 가득 메워지는 업무들을 보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저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재빨리 몸을 움직여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머릿속을 점령한 생각들을 밀어냈습니다.


철저하게 급여 생활자인 저는 오전 내내 부지런히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인터뷰 원고도 각색하고, 또 마케팅 효율까지 일일이 측정하면서요. 열 손가락 모두 골고루 춤을 추듯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오전 업무들이 모두 끝나있더군요.

잠시 의자를 뒤로 물려 뻐근한 어깨를 풀어주다가 문득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슬며시 핸드폰을 쥐고 아무도 모르게 문밖을 나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신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쩐지 모를 발랄함까지 묻어나는 당신의 음성에 나는 오늘 당신의 하루가 무탈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무탈함에 고단함으로 가득했던 한낮의 시간들을 잊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후를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은 퇴근 후에 글을 쓰러 가요. 저와 아주 결이 잘 맞는 분과 함께요. 그분과 함께 따뜻한 차를 마셔 차가워진 몸을 덥힌 다음 서서히 저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나갈 겁니다. 그런 다음, 풀어진 글들을 그러모아 그분과 이야기를 나눌 거예요.

그렇게 저는 충만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다시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합니다. 나의 저녁처럼, 당신의 저녁도 소소한 기쁨으로 충만한지 물을 거예요. 당신이 어떤 대답을 내게 건넬지 궁금하네요.

한낮의 당신처럼, 저녁의 당신도 무탈했다, 행복했다, 내게 답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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