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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Oct 22. 2021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

나는 걸어서 회사를 갑니다.

"더 이상 지하철을 타야 되는 회사에는 가지 않겠어"


1년 전, 2호선 라인에 있던 회사를 박차고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이제 더는 지옥철에 시달려야만 당도할 수 있는 회사에 몸 담지 않겠다고. 


그리하여 난 이직할 회사를 알아볼 때, 연봉보다도 먼저 집과의 거리를 따졌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지, 2호선 라인이 아닌지를 꼼꼼하게 따졌다.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과 좁은 지하철 칸에 엉겨 붙어 하루의 첫 출발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다행히도 내가 사는 곳은 역삼역과 언주역 사이. 그러니까 강남권. 덕분에 걸어서 갈 수 있을 법한 회사가 꽤나 많았다. 도보로 30분 이내의 회사 중에서 나의 핏과 맞는 곳들을 1차로 선별했다. 그리고 업무 조건, 복지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다 비슷비슷한 조건과 분야였기에 난 가장 먼저 연락이 오는 곳으로 거취를 결정하기로 했다. 다행히 가장 먼저 면접을 본 곳에서 합격 통보가 내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인사팀에서 제시한 연봉 조건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집에서 너무 가깝다는 점, 걸어서 25분, 버스로는 딱 2정거장이면 출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결국 난 가깝다는 이점에 푹 빠져, 덜컥 입사를 결정하고야 말았다. 

역시나 만족스럽지 못한 연봉은 나를 많이 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덧 11월이 지난 지금,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자부할 수 있다. 연봉에 불만족하는 대신에 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실시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을 확보하게 될 수 있었으니까. 




출근 시간은 오전 9시다. 미라클 모닝을 실시하는 주간이 아니라면 난 대부분 7시 20분에 눈을 뜬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기분 좋게 일어나 준비를 시작한다. 아침밥을 꼭 챙겨 먹는 스타일은 아니라, 비타민 주스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를 채운다. 좋아하는 반지를 양손에 끼고 가방을 어깨에 휙 걸치는 것과 동시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내가 집을 나설 때, 위태롭게 티비 위에 걸려 있는 시계의 바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8시 25분을 가리키고 있다.


출근을 하러 가는 길에는 언제나 기나긴 골목길을 지난다. 이 길을 지날 때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주택가, 집 앞을 청소하며 아침을 여는 백발의 어르신들, 따뜻한 곳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작은 고양이들을 구경하다 보면 금방 회사까지 바로 이어지는 큰 대로변이 나온다. 


대로변으로 나오면 각종 카페들이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파트너들이 밀려오는 출근러들을 응대하고 있는 스타벅스부터, 갈색 모자와 앞치마를 두르고 뜸한 손님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커피빈까지. 누군가 문을 열 때마다 바람을 타고 코 끝으로 전해지는 커피 향을 맡으며 15분 정도 걸으면 회사 입구가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을 도착해 밤새 곤히 잠들어 있던 컴퓨터의 전원을 누른다. 겉옷을 벗고 소독 티슈로 책상을 휙 닦고 앉으면 거의 정확하게 8시 58분쯤이 된다. 애정하는 초록색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받아 한 모금 홀짝 마시며 업무를 시작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오후 6시. 퇴근이다. 주섬 주섬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발걸음이 가볍다. 사뿐사뿐 한 발짝씩 내디디며 집 앞의 스타벅스까지 간다. 즐겨 먹는 아이스 자몽허니블랙티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아 앉으면 정확하게 6시 30분. 퇴근해서 집 앞의 카페까지 와서 음료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세팅하는 데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예전 회사였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6시 30분이면 단 1분이라도 일찍 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퇴근 후, 카페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푹신한 매트리스에 몸을 던져, 뽀송뽀송한 이불과 한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걸어서 편안하게 그리고 빠르게 퇴근할 수 있으니 난 카페에서 나만의 사이드프로젝트인 '독립출판'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난 거의 매일 퇴근 후 스타벅스에서 책을 쓴다. 때로는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하고, 전날 밤 공들여 골라 가방 속에 넣어둔 에세이를 꺼내 읽기도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이 여유는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에너지 소모가 적어지니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다.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난 요즘이 제일 즐겁다. 회사에서는 돈을 벌고, 커리어를 쌓고, 퇴근해서는 매일 글을 쓰는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의 균형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삶. 내 인생에 앞으로 이렇게 평화로운 때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평화롭고, 선물 같은 시간이 여기서 딱 멈췄으면 좋겠다.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 힘을 다해 붙잡아 두고 싶다.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지만, 그래도 나의 바람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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