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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Feb 06. 2022

어느 이른 새벽의 단상

 1. 동이 트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툼한 잠옷을 입었음에도 온몸을 파고드는 한기에 잠시 눈을 떴다. 이불을 어깨까지 한껏 끌어올리다가,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슬그머니 창문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미처 동이 트기도 전이었다. 온 세상이 어두웠다.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 손을 이곳저곳 뻗어 핸드폰을 찾아내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겨우 새벽 4시에 불과했다. 출근 시간까지는 거의 5시간이 남은 상황. 조금 더 자야만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머리맡의 책을 꺼내 들었다. 매번 자기 전에 2~3페이지씩 읽던 에세이였는데,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모조리 읽어내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 무거운 몸을 일으켜 따뜻한 둥글레차 한 잔을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고 있는 동생에게 방해가 될까 봐, 작은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어내려갔다.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몰입하여 책을 읽다 보니, 서서히 동이 터 오르기 시작했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방에 태양이 기운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점점 더 햇빛으로 물들어 가는 방을 보면서 '동이 트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평화롭고 안온한 시간이 영원했으면, 부디 계속하여 이 순간이 반복되었으면 하고 빌었다. 아주 간절히.


2. 소비를 더 줄여야겠다. 

최근 들어 푹 빠진 유튜브 채널이 있다. 매주 절약하는 삶을 실천하며 적나라한 가계부 영상을 업로드하는 '강과장' 채널이다. 사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짠내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일까. 인생은 단 한 번뿐인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한 번의 인생을 저렇게 궁상맞고 처절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아이스크림 값 하나도 아끼고,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눈물이 날 정도로 처절하게 절약한 돈으로 아파트도 장만하고 자신에게 투자하는 그를 보며 생각이 확 달라졌다. '소비는 내가 돈을 버는 이유'라는 마인드를 가진 나. 저축과는 거리가 멀고 미래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님의 지원 아래, 강남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분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갈 수는 없다. 분명 결혼도 해야 하고, 나만의 책방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자본금이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전부터, 가계부를 쓰면서 소비 형태를 파악하고 있다. 매주 합산을 해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가스비, 수도세, 전기세 등의 공과금과 핸드폰 요금 그리고 자기계발비와 부식비만 해도 적잖은 금액이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또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적금을 넣고 나면 크게 남는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소비를 줄이는 것뿐이라고 판단했다. 불필요한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매일 가계부를 쓰며 확인한다. 또,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체크카드나 현금을 쓴다. 원고 작업 목적이 아닌 카페 이용은 자제하고, 편의점에 의존했던 점심도 이제 되도록이면 직접 준비해서 다니고 있다. 덕분에 몸이 고생을 하지만, 내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매일의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조금씩 줄어드는 카드 값, 서서히 풍족해지는 통장 잔고를 보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3. 이젠 나를 보듬어 줄 시간이다.

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사람이다. 조금의 나태함도, 어리석음도 용서하지 못한다. 매일 나를 질책한다. '넌 도대체 왜 그러냐고. 다른 사람들을 좀 보라고. 너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이냐고.' 욕심이 많은 나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한다. 때로는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며 자신을 격려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때문에 요즘은 자존감도 나날이 떨어지고 있고, 극한의 스트레스로 쉽게 피곤해 하고, 기억력도 많이 떨어졌다. 수시로 두통에 시달리고,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스스로를 매몰차게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나로 인해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다. 당분간은 욕심을 내려놓고, 나를 지배하고 있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줘야지.

잘 하고 있다고. 네가 최고라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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