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6일. 경주를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일하며 지내다 보니 자그마치 4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서울에 살며 난 참 많이도 힘들고, 또 즐거웠다. 그간 힘들었던 순간마다, 즐거웠던 순간마다 느꼈던 감정들을 악착같이 프리퀀시를 모아 얻게 된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기록해 두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꼭꼭 눌러쓴 그 기록들을 어쩐지 나만 보기에 아까워 책을 쓰는 중인데, 분량 상의 문제로 미처 책에 담지 못한 기록 보따리들을 브런치에 슬며시 풀어볼까 한다. 내겐 너무 소중한 기록이기에.
2021.03.01 |서울살이의 기쁨|
강남역 교보문고, 우리 집에서 걸어서 단 15분.
하루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지 않으면 눈알이 핑핑 도는 활자 중독자. 그런 내게 고향, 경주는 참으로 갑갑한 도시였다. 교보문고, 알라딘과 같은 대형 서점이 단 한곳도 없었으니까. 난 엄마에게 매번 경주는 왜 큰 서점이 하나도 없냐며 투덜거리기 바빴다. 그랬던 내가, 강남으로 이사 오면서 매일같이 서점에 들를 수 있게 되었다. 강남역 교보문고까지 걸어서 딱 15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퇴근 후 난 곧장 눈에 불을 켜고 교보문고로 달려가 에세이 코너로 직진한다. 신간들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여유가 되면 인문학 코너까지 샅샅이 훑는다. 거의 매일같이 들르는 곳이지만 올 때마다 참 새롭다. 고심 끝에 오늘 밤을 함께 할 책을 엄선하여, 계산까지 마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회사에서 쌓인 모든 분노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간혹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할 때면 지하 2층에 있는 핫트랙스까지 훑어본다. 어느새 양손을 가득 채운 각종 필기류와 마스킹테이프, 파우치를 보고 있노라면 켜켜이 쌓여있던 견고한 스트레스 탑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손이 베일 듯 날카로웠던 마음이 일순간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덕분에 한 달 카드값 사용처 목록을 보면 교보문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지만, 고된 서울살이에 지친 나를 잠시라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기에. 그쯤이야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여기기로 했다.
2019.01.17 |서울살이의 슬픔|
회사도 힘든데 출퇴근길까지 지옥이라니.
왜 이렇게 고난의 연속일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욕심이 과도하게 많은 상사 덕분에, 업무 스펙트럼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 오늘은 말도 안 되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서는 하마터면 곧장 사표를 던질 뻔했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퇴사했다간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걱정시킬 것이 뻔하여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단순히 회사 일만으로도 죽어날 지경인데, 출근길 지옥철은 날 더 지치게 만들었다. 이미 포화 상태임에도 거침없이 밀고 들어온 사람들 덕분에 지하철을 초만원 상태. 숨을 쉬는 것도 힘들고, 핸드폰을 볼 수도 없다. 방배역에 이를 때쯤이면 숨이 막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게 진을 다 빼고 교대역에 내려서 환승하여 회사까지 가면 곧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냉수를 한 잔 마시고 좀 쉬려고 하면 어김없이 외부에서 일하는 상사는 내게 전화를 걸어 각종 업무를 지시하기 시작하고 또다시 난 지옥 속으로 들어가며 퇴근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퇴근길도 지옥인 것은 마찬가지. 2호선 교대역. 곳곳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전투적으로 지하철에 오른다. 1분이라도 집에 빨리 가겠다며 아우성인 사람들.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지만, 그래도 가끔 너무하다 싶은 사람들이 있다.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들이미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아, 물론 어떤 상황이라도 폭력은 용인될 수 없기에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2019.03.12 |서울살이의 기쁨|
탄성을 자아내는 광장시장의 먹거리들.
경주에서 살 때, 우연히 KBS에서 저녁 시간대에 방영하는 맛집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해당 프로그램 속의 열정적인 리포터가 맛있는 저녁 한 끼를 위해 찾아간 곳은 바로 광장시장이었다. 그녀는 싱싱한 노른자와 달달한 배가 올려져 있는 육회 그리고 윤기가 흐르는 빈대떡을 정신없이 먹어댔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이미 저녁을 거하게 한상 먹고 난 뒤였음에도 입에 침이 한가득 고였다.
그때 알게 된 광장시장의 존재를 잊지 않고 있다가 종로 쪽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 들러봤다. 시장 초입에서부터 풍겨오는 빈대떡 냄새에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차오르는 식욕을 간신히 억누르고 유명하다는 육회집부터 먼저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모님이 "2인분 맞죠?" 하시더니 곧바로 육회를 내오셨다. 사진을 후다닥 찍고 입안에 육회 한 젓가락을 밀어넣자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숨도 쉬지 않고 밀어넣었더니 육회는 금세 동이 나고야 말았다. 한 접시 더 주문해서 먹을까 하다가 일행의 권유로 빈대떡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빈대떡 가게로 들어가니 빈대떡 말고도 육전과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다. 고민 끝에 빈대떡과 육전, 마약김밥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한껏 군침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음식을 기다리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타들어 가는 내 속을 알았는지 다행히 음식은 10분 만에 나왔고 장수막걸리와 사이다를 한 잔 주문해 적절한 비율로 섞고 본격적인 먹방을 시작했다. 빈대떡과 막걸리+사이다의 조합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놀랍게도 그 뒤의 기억이 없다.
2020.11.01 |서울살이의 슬픔|
엄마가 서울에 살았으면 좋겠다.
상사의 적극적인 권유로 퇴사한 회사에 재입사를 했었다. 그건 내 인생 일대의 실수였다. 높은 연봉과 나이에 비해 만족스러운 직책. 그거면 난 행복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재입사를 선택하며 새롭게 배정받은 업무는 나의 성향과 너무 맞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내가 필요해서 부른 거라고 말했던 상사도 내가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니 언젠가부터 나를 가까이하지 않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메말라갔다. 주말에도 각종 통계 자료와 DB 유입에 시달렸더니 점점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면서 내게 위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날. 난 간절히 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위로 받을 엄마가 필요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상황상 그럴 수가 없었다. 참 이상하게도 극한의 상황에 치닫을 때면 참으로 간절하게 엄마 생각이 난다. 언제나 따뜻한 엄마 품에 안겨 엉엉 목놓아 울고 싶었다. 이럴 땐, 정말이지 우리 엄마가 서울에 살았으면 좋겠다. 300km가 넘게 떨어진 경주가 아닌 서울에서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