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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r 22. 2022

야심한 밤, 동생과의 맥주 한 캔

어제는 유난히 피곤했다. 하루 종일 온갖 잡념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밀려오는 피로감을 떨치지 못하고 일찍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생각이 많으니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다가, 유튜브 영상을 좀 보고 있으니 동생이 공부를 마치고 귀가했다. 

평소와 달리 동생을 반겨줄 힘도 없었다. 짧게 인사만 건네고, 다시 매트리스 위에 뻗어버렸다. 동생이 오면 씻어주려고 비싼 설향 딸기도 주문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는데, 그걸 씻을 여력도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녀에게 직접 씻어서 먹으라고 말했다. 한참을 딸기를 먹던 동생은 갑자기 말했다. 배가 고프다고. 

그러고 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퇴근길에 간단하게 무얼 먹기는 했지만, 허기가 졌다. 무언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동생에게 "우동 어때?"라고 먹으니 씩 웃었다. 누운 자리에서 바로 앱을 켜서 주문을 마치고 우동을 기다렸다. 

30분이 지났을 무렵, 뜨근한 우동이 도착했다. 내가 뚜껑을 열고, 수저를 놓는 동안 동생에게 냉장고 안의 맥주 한 캔을 꺼내오라고 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은 안주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 동생이 꺼내준 맥주캔은 아주 차가웠다. 잽싸게 캔을 따니 동생이 "나도 마셔 볼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 술을 거의 입에도 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맥주 자체의 맛을 즐기지 않는 동생인데...맥주를 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지금 집에 있는 맥주는 500ml 딱 한 캔. 머그컵에 맥주 절반을 따라주었다. 냄새를 한참 동안 킁킁 맡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꼴깍꼴깍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 한 입, 우동 한 젓가락. 환상의 궁합이었다.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야식과 맥주를 즐겼다. 

모처럼 동생과의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 어떤 일들도 그저 흘러가는 일이겠거니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만 같이. 곧 중요한 시험을 앞둔 동생이 힘들까 봐, 사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들에 대해 쉬이 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처럼 가끔은 동생에게 털어놓고, 맛있는 음식과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내 마음을 좀 달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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