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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유 Aug 17. 2024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내 첫 알바도 꿈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어젯밤부터 내 알바 이슈로 냉랭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전환해보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 안에 어색한 공기가 자욱한 건 결혼 10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힘든 과제다.

연애 시절도 아니고 카톡을 썼다 지웠다 한 것도 모자라 남편의 카톡을 이리도 기다리다니. 정신이 피폐해지기 전에 얼른 식탁 위로 핸드폰을 툭하고 던졌다. 온 신경이 핸드폰을 향해 있어도 기어코 무심한 척 플러스 쿨한 척을 시전 해본다. 나란 인간 대체 혼자서 왜 이러는 걸까. 난 어느새 소머즈가 되어가고 있었다.      


-카톡 카톡


드디어 애타게 기다리던 알림이 울렸다! 일하느라 바빴는지 아니면 화난 마음을 추스른 건지 남편은 정확히 37분 만에 내 카톡에 응답했다. 두구. 두구. 두구 과연 남편은 내가 먼저 내민 화해의 손길을 잡아 줄 것인가.      


-고생 많았어. 내가 사줄게.      


-내가 언제 밥을 샀는지 기억도 안 나. 오늘은 내가 사게 해 줘. 여보!     


남편 카톡에 안도감이 밀려오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운함이 내 맘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고생 많았다고 할 거면서 왜 아침밥은 안 먹는다고 해서!! 아까운 음식 다 버리고 말이야. 종일 사람 신경 쓰이게.’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다르다고. 제발 먹고 싶은 거 하나만 말해라 하다가 엉겁결에 고생했단 말까지 들어놓고서는 어럽쇼. 이게 무슨 도둑놈 심보인지.      


-(카톡 카톡) 그럼 치킨 어때?     


-좋지! 치. 맥 콜!!!     


퇴근한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다 중문 앞에 서 있는 나와 아이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우린 둘 다 어색한 미소로 서로를 맞았다. 그렇다고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러 다 같이 안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자 내 품에 안긴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오늘 어디 갔다 왔어?”     


“응? 엄마 오늘 다니 이모 만나서 글 쓰고 왔어.”     


“다니 이모? 이모 꿈도 작가야? 다니 이모는 어떤 글 써?”     


“다니 이모는 동화.” (친구는 꾸준히 책 육아를 해왔기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동화였다.)     


“우와! 나랑 비슷하네! 동화책에도 그림이 많이 있잖아. 난 그림 작가가 꿈인데 맞지? 그리고 엄마 오늘 젤리 사줘서 고마워!.”  

   

“아니야. 엄마가 더 고마워!”   

  

내 아이의 꿈은 그림작가이다.


오늘 하루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지만 아이에게 과일 택배를 싸고 왔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나도 흠칫 놀란 건 사실이었다. 같이 누워있던 남편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한번 흘깃거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휴 살았다. 만약 왜 거짓말해?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모르는 척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내게 주어진 미션은 아이가 잠드는 시간을 눈치껏 계산해서 적절한 타이밍에 치킨을 주문해야 한다. 자 슬슬 배달앱을 켜 볼까나.      




아이에게 젤리를 사주고 남은 잔액- 59,000원  


치킨집이란 치킨집은 모조리 기웃기웃. 뭘 시키면 잘~ 시켰다고 소문이 날까. 세트를 시켜볼까. 두 마리를 시켜볼까. 아. 고민하는 이 순간도 너무 행복하다. 내가 번 돈으로 주문하는 야식이라니. 소식좌 남편의 픽은 항상 먹던 교촌 오리지널 반반. 믿을지 모르지만 둘이서 오리지널 반반을 단 한 번도 다 먹은 적이 없다. 대략 스물네 조각 정도 들어있다면 1/3을 남기는 일이 태반이니 내가 열 조각을 먹는다 치면 남편이 먹는 건 대략 대여섯 조각. 안 먹어도 너무 안 먹는다. 이건 TMI지만 연애 시절 초반에 남편과 처음 삼겹살을 먹으러 갔는데 고기 3인분을 먹고 바로 밥을 주문하는 남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둘이서 3인분은 그 가게의 고기 맛을 알아보는 맛보기 아닌가. 왜 어른들이 고기 먼저 많이 먹고 밥을 먹으라고 하겠는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날 남편과 헤어지고 혼란스러운 맘에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박. 고기 3인분 먹고 바로 밥 시킴.     


-헤어져.     


천사 같은 내 친구가 단번에 헤어지라고 한 것을 보면 가벼운 사안이 아닌 건 확실했다. 먹선생 사전에 고기 3인분 먹은 데이트는 난생처음이었지만 난 이끌린 듯 소식좌 끝판왕과 결혼했다. 내게 남은 59,000원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는데 소식좌 남편 덕에 오늘 받은 일급 일부는 내 통장에 고이 잠들게 되었다. 아이는 빠르게 잠이 들었고 그날따라 치킨도 빠르게 배달되었다.

뭘 해도 되는 밤이었다. 치킨을 중앙에 두고 내가 좋아하는 잔에 시원한 맥주를 콸콸 따르고 축배를 들었다.      


“자. 건배!.”


"................"    


먹자고 할 땐 언제고 남편의 반응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했다. 기대했던 즐거운 치킨 파뤼는 물 건너갔고 사라진 줄 알았던 불편한 기운만 감돌았다.      


“........... 내일도 가?”     


“아니. 사람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말은 해뒀는데 이제 안 갈 수도 있어. 그러니깐 너무 신경 쓰지 마.”     


영웅담을 풀어내듯 오늘 일과를 신나게 풀어내고 싶었는데 그것 또한 글렀다. 남편은 내 첫 알바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치킨 1/3을 남기고서 적막한 치킨 파뤼는 쓸쓸히 막을 내렸다.      




그렇게 통장에 고이 잠든 36,000원을 까맣게 잊고서 며칠이 지났다. 난 여전히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아이와 한바탕 놀아주고 아이의 아침밥을 차리고 광란의 질주로 겨우 시간 맞춰 아이 등원에 성공했다. 긴 한숨과 같이 저벅저벅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침밥을 먹고 바리바리 짐을 챙겨 아파트 독서실로 향한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내 첫 알바도 꿈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카톡 카톡


'아이고 깜짝이야!  진동모드를 안 해놨네! 이놈의 정신머리 하고는!! 독서실에 나밖에 없으니 망정이지.'      


-담주 월요일 알바 가능?     


이럴 수가! 생각보다 빨리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난 잠시 잠깐 고민하다가 3분 30초 만에 친구에게 응답했다!!     


-그럼!! 월요일에 보자!


순간 남편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지! (일곱 살 딸이 자주 하는 말) 그리하여 서른여덟 아줌마의 우당탕탕 알바 도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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