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직장인의 미국 취업기 -1-
“어둠을 그리려면 빛을 그려야 합니다.
빛을 그리려면 어둠을 그려야 하고요.“
내 인생의 명암은 분명하다.
2023년 여름부터 2024년 말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고
동이 트기 직전이 되어서는 암흑에 파묻혔다.
하나의 사건으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념과 믿음을 부정하는 것들이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정신이 나약해지고 부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마련이다.
"It's going to eat you alive."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Eat you alive." 표현이 직관적이라 마음에 들었다.
딱 그런 기분이었다. 뭔지 모를 이 부정적 기운이 나를 산채로 잡아먹는 느낌이었다.
이전 글에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취업준비 과정이 있다고 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다.
개강 전 뉴욕 친구 집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단톡방에 모집공고가 올라왔다.
2024년 여름 인턴 모집공고였다.
MIT 대학원 한 학년 선배가 자기가 인턴을 하고 있는 회사에서 내년 여름 인턴을 모집하니 지원해 보라고 동문단톡방에 올린 것이다.
‘아직 1년이나 남았는데.. 아직 입학도 안 했는데’
미국 여름인턴은 일찍 모집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또 미국 채용에 대해 건너 건너 들은 게 있다면 ‘추천의 힘’이다.
추천과 채용비리의 경계가 모호한 한국과는 달리,
미국 취업시장에서는 지원자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누구의 추천으로 지원했는가’라고 들은 바 있다.
미국 시장에 기반이 전혀 없는 나로는,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바로 선배한테 연락해 이력서를 전달했다.
다행히 최신화해 놓은 이력서가 있어서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I hope you had a stellar summer!"
채용 담당자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선배로부터 이력서 잘 받았으며 통화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선배한테 이력서를 전달한 이후에 몇 군데 지원을 했지만 처음 받아보는 회신에,
‘역시 추천의 힘인가..’ 싶었다.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회신했고, 그날 오후,
‘Screening Call'이라고 불리는 첫 번째 통화를 했다.
Screening Call 에서는 간략하게 회사를 소개해 주고, 여름인턴십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줬다.
얼마를 받게 될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달러 환율이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을 때라 간절함을 넘어 조급해졌다.
그 외에는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출장 다니는 건 괜찮냐고 해서 너무 좋다고 했고
(사실 혐오한다)
담당자는 "그렇지? 부동산 포지션에 지원하면서 출장 싫어한다는 지원자도 있다니깐?"
이라고 하며 원하던 대답을 들어 다행인듯한 반응을 보였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메일이 왔다.
첫 면접 일정을 잡는 이메일이었다.
Screening Call 단계는 ‘잘하는 놈을 뽑는 단계’보다는 ‘이상한 놈을 걸러내는 단계’에 가깝다.
부동산 직무에 지원하면서 출장 가기 싫다는, 그런 싹수를 걸러내는 단계인 셈이다.
아무튼 첫 번째 면접이라니 한국에서 정장을 챙겨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상 면접이었지만 스스로 진지함과 긴장감을 주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 쓸 생각이었고,
하늘은 못 속인다는 생각에 심지어 향수도 신경 썼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얼른 선배를 만나야 했다.
카톡과 이메일은 주고받았으나
보스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만나본 적은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포지션을 공유해 줘서 고마움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도움이 필요했다.
최근까지 그곳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회사 내부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야 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