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과 제사

시대의 풍습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풍경

by 금오름

76살되신 친정 어머니가 이제 김장을 안하시겠다고 선언했다. 그야말로 모라토리움같은 얘기이다. 어머니는 일년내내 김치를 직접 담궈 먹으신다. 시중에 김치 따위는 온갖 조미료 범벅에 위생도 어찌될지 모르고 도대체 믿지를 못하시는 어머니는 열무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동치미 등등 종류별로 김치를 담궈 자식들에게 나눠주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인제 김장을 안한다고 하신다.

재작년 85세로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본인이 병으로 침상에서 생활하기전까지 제사는 꼭 지내야된다는 입장이셨다. 십수년전 일찍 여읜 와이프를 생각하며 명절에 제사는 꼭 지내야한다는 이유였다. 어느날 큰아들 내외가 더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아버지앞에서 선언하는 바람에 효자인 작은 아들, 남편의 연례행사로 챙겨야하는 것이 되었다.


김장과 제사. 일년중 온가족이 모이는 연례행사. 아버지 어머니는 그 행사와 더불어 자신이 낳고 기른 아이들을 다 모아 세를 과시한다. 이 날이 제일 권위가 서는 날이고 그동안 바쁘다고 못왔던 자식들을 다 모아 볼수 있는 날이다. 외국인들이 봐도 정말 한국의 독특한 풍습이고 그에 따라 다들 신기해하는 광경이다.

그 유래가 언제부터인지는 알수 없지만 우리 민족의 대표 풍습으로 자리한 두 행사. 지금의 50,60대 어머니들은 두 행사를 다 없애던지 간소화하고 싶어한다. 사실 제사는 과거 유교를 신봉하는 양반집에서 신분을 과시하고자 지내왔던 행사이고 김장도 절에서 겨울내 먹을 식재료를 저장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현대에는 신분사회도 없어지고 겨울에 저장이 가능한 냉온장고도 마련되어있고 사실 그 의미를 떠나 실용도는 떨어져있는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나 아버지는 과거부터 내려온 그러한 행사를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시절 그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던 날이고 제사로 인해 나의 가족과 조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며 소속감을 느낄수 있었고 김장으로 인해 바쁜 가족들이 모여 서로 안부와 인사를 할 수 있는 날이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다 떠난 빈 둥지에 아이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행사였다.

그런데 지금 50,60대 어머니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결혼 초기에 제사와 김장으로 다들 고생하셨고 이제 그 두 행사를 안해도 되는 이유들이 생겼다. 그리고 예전처럼 자식들을 기다리면서 모아불러 들이고 싶어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여행을 가거나 여유롭게 지내기를 바란다. 얼마전에 명절때 동네 식당에 가봤더니 식구들 10~20명 같이 와서 밥을 먹고 가는 가족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머니들이 음식 준비하고 하시는 것들에 이제 진력이 나신 듯하다.


이제 10년, 길게보면 20년 안에 제사와 김장은 사라질 것이다. 대신 다른 가족 행사들로 대체가 점점 되어갈 것이다. 나만해도 이제 김장보다는 김치를 사먹는데 익숙하고 제사는 시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간단히 떡 과일 몇가지 놓고 혹은 그냥 납골당에 가서 기도내지 인사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설이나 추석 명절은 이제 가족 여행기간이 된지 오래전이다. 명절에 지방 관광지나 공항이 늘 북적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가 지나간다. 새로운 세대에서 새로운 가족 행사들이 생겨날 것이다. 힘들었던 제사와 김장은 이제 과거의 풍습으로 남고 그 시절 힘들었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모였던 날들의 추억을 생각하며 그리워할 날이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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