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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속의 외침

by 낙화유수

호수는 이미 폭발의 장면을 잊은 듯 고요했지만, 사람들의 귀에는 그 소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적막이라기엔 너무 거칠고, 소음이라기엔 너무 슬픈 울림이었다.

관중석 한가운데에서 무명 선수가 벌떡 일어났다. “내 동료가 아직 물속에 있어! 멈추지 마!” 갈라진 목소리는 명령 같기도 했고, 절규 같기도 했다. 그 울림에 몇몇은 눈을 질끈 감았고, 몇몇은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기자들의 삼각대가 덜컥 굳어졌다. 중요한 건 이름조차 모르는 누군가의 외침이라는 사실이었다.

한준은 숨을 고르다 멈췄다. 그 목소리가 자기에게도 날아오는 것 같았다. “멈추지 마”라는 말이 어쩐지 “왜 너만 멈췄지?”로 뒤틀려 들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숨은 들어왔지만, 차갑고 떫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죄로 변하고 있었다.


구조선은 여전히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잠수부가 손짓을 보냈고, 보트 위 조명은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가 체념하듯 흔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빛을 좇다가, 다시 무대 쪽으로 돌아왔다. 앞줄에서 외침이 부딪쳤다. “가림막 치지 마! 기록해야 해!” “카메라 내려! 사람이 먼저야!” 같은 사건, 다른 윤리. 두 개의 목소리가 충돌하며 공기를 갈랐다.


심판석은 굳어 있었다. 리사는 펜을 쥐었지만, 종이를 펴지 않았다. 머릿속엔 이미 지운 단어가 떠올랐다. ‘사고?’(X) ‘의도’(O). 그녀는 펜촉으로 종이 모서리를 천천히 긁었다. 잉크가 흐르지 않아도, 결은 살아 있었다. 무전기에서는 상반된 명령이 교차했다. “연방 라인 오프.” “현장 브리핑 홀드.” “스태프 이동, 좌측 통로.”

문장 대신 명령부호만 난무했다. 리사는 메모 대신 서명을 택했다. 종이 하단, 아주 작은 글씨로 날짜와 시간. 오늘은, 시간만이 말이 되고 있었다.

찰스 협회장은 커프스를 매만지다 무전기를 옆으로 밀었다. 권위는 늘 소리로 증명된다고 믿어왔지만, 오늘은 소리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침묵이 이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칭찬받지 못할 승리였다.

라울은 난간에 기대 있었다. 담배는 꺼져 있었지만, 그는 연기를 본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바람막이 유리를 손등으로 두 번 두드리자 맑은 소리가 났다. ‘이 정도 울림이면 시작도 안 한 거군.’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은 아니었고, 그러나 기쁨이 맞았다.


보안관들이 줄을 다시 묶었다. 외삼촌은 확성기를 거부했다. 거리가 가까워야 말의 무게가 전해진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안전 절차에 따른다. 질문은 받지 않는다. 추측은 여기서 끝낸다.” 추측을 끝내자는 말은 새로운 추측을 불러왔다. 관중 뒤에서 낮은 대화가 흘렀다. “끝난 건 추측이 아니라 경기야.” “경기가 끝난 게 아니라 믿음이 끝났지.”

기자석 앞줄, 무릎이 벗겨진 기자는 노트북을 폈다. 기사 제목 칸에 열아홉 글자를 적었다. 〈누구의 침묵이었는가??〉. 리드는 비워 두고 사진 폴더를 넘겼다. 불꽃보다, 불꽃이 사라진 얼굴이 더 기사였다. 아이의 눈, 보안관의 손바닥, 잠수부의 뒷목, 리사의 엄지, 무대 그늘의 라울. 그는 사진을 크게 열었다가 닫았다. 확정은 사라졌고, 오늘 기사에는 보류만 남았다. 정직은 때로 겁이 아닐까?

무명 선수는 다시 소리쳤다. 이번에는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준은 알았다. 대답을 원해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는 걸. 혼자 남지 않기 위해 되뇌는 주문 같은 호명. 그 울림에 일부 관중이 일어섰다. 시위의 몸짓과 기도의 자세가 동시에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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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1: 구호와 질서의 충돌

리처드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건 테러다.” 그러나 오늘은 목소리가 커도 뉴스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고개가 옆으로만 움직였다. 불안을 알아채면 나오는 몸짓. 리처드는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원고가 없을 때 사람은 진심을 말하거나, 침묵한다. 그는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택하지 못했다. 관중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렀다. “테러라면 증거를 보여, 네가 아니라.” 한 문장이 사람 하나를 뒤로 미뤘다.

리사는 메모장을 펼쳤다. 펜 끝이 종이를 스쳤다. ‘브리핑 지연, 무전 상충, 현장 봉쇄, 군중 분열, 구조 지속.’ 단어 다섯 개. 그 아래 작은 점 하나. “증언 확보 예정 – 무명 선수(초록 재킷).” 기록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시계를 보고 시간을 썼다. 14:32. 읽는 순간 현재가 되는 문장들만 모았다.


한준은 벽면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꺼지지 않은 불길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사고인지, 개입인지, 답은 영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경기장 끝자락에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걸어 나왔다. 발걸음마다 공기가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어떤 이는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고, 어떤 이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주머니 속 금속이 번쩍이며 햇빛을 잡았다. 그 섬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뼘 낮췄다.

한준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분명히 울렸다. “폭발은 서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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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2: 검은 모자의 그림자

한준은 뒷걸음질 쳤다. 다리는 힘을 잃었고, 심장은 차가운 물에 잠긴 듯했다. 군중의 웅성거림은 파도처럼 번졌다. 일부는 도망쳤고, 일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었지만 손은 떨려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경기장은 혼돈과 침묵과 공포가 뒤엉킨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 소용돌이는 이미 그의 발목을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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