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자란 60 년대 시골 마을엔 집집마다 개를 키웠는데 그 시절 개는 지킴이이자 가축이고 보양식 자원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날 잡아먹기도 하였다.
그렇게 왔다 가는 개들에게도 이름은 지어 불러줬는데 마을 개들의 이름은 모두 메리 혹은 도꾸(dog)였다.
유난히 똑똑하고 잘 생긴 N 번째 메리에게 갓 중학생이 된 몸 약하고 내성적인 아빠는 정을 주었다.
아빠는 5km 정도 거리를 걸어서 중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 큰길을 3킬로 정도 걷다가 논과 밭이 펼쳐진 길로 꺾어 30여 분 들어와야 마을이 있었다.
어둑해진 초저녁 혼자 논 사이를 걷는 게 심심하고 무서워 큰길에서 접어들면 허공에 “메리! 메-리! “ 두어 번 외치고는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단다.
걷다 보면 헉헉 소리와 함께 논을 가로지르며 메리가 달려왔고 둘은 나란히 귀가하였다.
할머니가 마당에서 메리 저녁밥을 주고 있노라면 갑자기 메리가 귀를 쫑긋하며 움직임을 멈췄다가 또 한 번 귀를 펄럭하고는 맹렬하게 대문을 향해 달려 나갔단다. 영문 모르는 할머니는 “밥 묵다가 어디가노오-!”할 뿐이었다.
아빠의 메리는 이전의 메리들과는 다른 운명을 맞게 되었다.
당시 개들은 마을 여기저기 다니다가 밥 때 되면 제집으로 왔는데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메리가 남의 집 닭을 물어 죽였다.
한 번은 닭값을 물어주고 넘어갔는데 이번엔 이웃집 염소를 물어 죽여버렸다.
못된 짓의 최후는 정해져 있다.
그래도 어른들이 소년의 마음을 헤아려 주어 메리는 도축 대신 개장수에게 팔기로 하였다.
이별을 알리 없는 메리와 이별이 다가올수록 슬퍼지는 소년
개장수가 오는 날 소년은 등굣길에 메리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오가며 봐뒀던 읍내 사진관에 가서 메리와 사진을 찍었다. 학교를 가야 하는 소년은 메리에게 “메리 인자 집에 가라!” 하고 몸을 돌렸다.
추적추적 걷다 뒤돌아보니 메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가라! 집에 가라! “
메리가 소년을 보며 '갸우뚱?’ 한다.
소년은 돌을 집어 메리에게 던졌다.
“집에 가라!” 돌을 몇 개 맞더니 천천히 집 쪽으로 돌아서는 메리, 소년의 가슴이 뻐엉 뚫렸다.
그날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늘 하던 대로 메리를 불러 봤지만 메리는 달려오지 않았고 집 마당에 들어서서 텅 빈 메리의 집과 그릇을 보고 ‘갔구나!’ 실감하였다.
나는 정 많던 아빠와 달랐다.
초등 시절 학교 앞에서 사 온 이마에 갈색 점이 있는 병아리가 시들시들 떨며 졸기만 하자 금세 흥미를 잃었다. 퇴근한 아빠가 손으로 따뜻하게 감싸 재우고 바닥으로 책상스탠드를 기울여 뉘어줘 가며 중닭으로 키웠다.
친구네 병아리들은 며칠 만에 모두 죽었는데 우리 집 병아리는 중닭까지 자라 상자를 뛰어넘고 영영 가출하였다.
대학생 때는 ‘강아지 절대 금지’라는 부모님께 “내 방에서 키울 거야” 라 우기고 하얀 스피치를 안고와 이름만 지어놓고는 또 나 몰라라 하였다.
방치된 미루는 엄마아빠의 사랑으로 송아지만큼 자라 부모님의 등산길, 여행길에 가장 먼저 차에 올라타는 귀염둥이가 되었다.
이토록 다정한 사람이 아빠여서,
그 다정함 속에 자랄 수 있어서 새삼 감사한 맘이다.
나도 내 안 어딘가에 대물림되었을 다정함을 열심히 꺼내어 나눠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