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나버려서 생각날 때마다 미안해하는 수밖에 없는 일들
B형 엄마와 B형 딸은 툭툭 짧은 대화를 나눈다.
대화엔 다정함 대신 가벼운 웃음이 묻는다.
길지 않은 말들에 슬픔이나 미안함 고마움이 섞이는데, 툭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 잘 챙겨 알아 들어야 한다.
산책 중에 잠시 물을 마시던 엄마가 불쑥 말했다.
"정여이 데리고 서울 대공원에 갔었잖아"
"응? 언제??(그럴 리가 없지 정연이는 너무 바쁜 K고딩이니까)"
듣다 보니 정연이 두 돌 즈음의 이야기였다.
"니 승여이 낳고 정신없을 때 정여이 지도 얼란데 동생 봤다고 엄마 아빠 뺏기가 풀 죽었길래 느그 아부지캉 내캉 데리고 갔었잖아"
"아 십오 년 전 이야기를 막 어제 이야기처럼 하는 거야? “
내 장난 어린 말에도 엄마의 눈은 회상 중이다.
"그때 정자에서 물이랑 김밥 싸간 거 먹이가 좀 쉬었다 또 갈라꼬 있는데 정여이가 저거 달라 카는 기라.
옆에 사람들이 옥수수를 먹는데 정여이가 그거를 보고 가리키면서 달라카는 기야."
"그래서 사줬어?"
"아니 안 팔아! 그 사람들이 집에서 싸와서 먹는 거야, 근데 아-가 말 하면 아나? 아직 어린데 못 알아듣지"
"ㅎㅎ”
"근데 그게 내도록 생각나는 거라 옥수수만 보면은... 아가 말은 못 알아 묵고 할매 할배가 옥수수 와 안 주노 섭섭했을 거 아이가"
엄마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아빠의 고향에서 한 시간 더 들어가는 곳에 선산이 있다. 그곳엔 아빠의 부모님과 그 윗대의 조부모님들이 계신다. 그리고 엄마아빠의 자리도 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도 멀고 거기서 한 시간을 더 가는 선산이다.
나는 20여 년 전 내가 20 대 일 때 당당하게 말씀드렸다.
"엄마 아빠도 서울에 천주교 납골당 미리 사둬요"
"으으응 말라꼬 우리는 선산에 자리 있잖아"
"거긴 너무 멀잖아요 나 혼잔데 아무 때나 갈 수도 없잖아 서울이면 얼마나 좋아 보고 싶을 때마다 가고"
아빠는 웃으며 "안 와도 된다 니나 잘 살아라~“
하셨고 나는 섭섭해서 눈물 한 방울 맺힌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었다.
요즘은 그때의 건방지고 당당했던 내 말이 자꾸 떠오르며 죄송해진다.
아빠도 엄마 옆에 가고 싶을 텐데 내가 왜 그런 투정을 했나.
아빠도 아빠의 엄마가 있었는데 말이다. 왜 끝까지 나의 아빠로만 남으라고 했는지.
아빠의 어린 시절과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랑스럽고 어리게 변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이제 와서 "그렇게 하세요, 아빠 뜻대로 하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차피 그렇게 진행될 거라 불필요한 말이니까.
그런데 또 아무 말 안 하자니 '그때 그 투정 부리던 거 이젠 안 그래요' ‘나도 아빠와 같은 뜻이에요’라고 하고 싶은데 꺼내기가 장황해서 마음에만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