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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Feb 18. 2024

부모가 자식 앞길을 막는 이유

관계 12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부모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자식이 있다는 것은 나도 부모라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부모는 자식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 부모도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를 해보는 것이므로 그 역할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에게 최소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얼마 전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갔다가 TV를 보고 계시던 사모님과 얘기하게 되었다. 사모님은 한국에 참 훌륭한 여자들이 많다고 입을 여셨다. TV에는 한미 정상회담 때 국빈만찬에 독도새우를 올렸던 요리사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 요리사는 성공적인 회담을 위해 음식을 고민하다가 한국의 상징이 되는 독도새우를 생각해 낸 것이다. 사모님의 이야기를 다 들어 보니 요리사가 여자였기 때문에 칭찬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모님은 그 옛날 아들만 귀하게 여기는 집안에 태어나셨다. 어머니는 딸만 넷을 낳고 죄인 취급받으며 사셨다. 넷째로 태어난 사모님은 어렸을 때 집안의 염원을 담아 항상 머리를 짧게 깎고 다녔고 남자아이 옷만 입었다. 다행히도 사모님의 동생은 사내아이로 태어났다. 그제야 사모님의 어머님은 한숨을 놓고 살 수 있었다. 물론 밑으로 남동생이 생겼다고 사모님이 대접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집안은 대(代)를 이을 남동생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주었지만, 사모님에게는 기름기 없는 풀떼기만 주었다.    

 

당시 부모들은 아들에게는 교육을 많이 했지만, 딸에게는 초등학교를 나와 집안일만 돕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모님은 생떼 쓰며 끝까지 고등학교에 다니셨다. 하루는 사모님이 학교에서 우등상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집에 왔다. 가족들이 우등상에 보고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은 그 우등상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모님은 가족의 무덤덤한 반응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아직도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형제자매는 모두 성인이 되었다. 모든 집안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들만 찾는 집안의 아들이 성공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오냐오냐하며 컸던 아들이 뭐가 아쉽다고 스트레스받으며 열심히 살았겠는가? 부모가 때 되면 알아서 밥 먹여주고 옷 입혀줬을 텐데 말이다.  

   

사모님은 아들을 낳기 위해 마음고생했던 어머니에게 같은 여자로서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래서 시집오기 전에 번 돈을 모두 어머니에게 드리고 왔다. 어머니가 자기가 준 돈으로 고생했던 세월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결혼하고서도 사모님은 계속 일을 하셨다.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집도 사주고 땅도 사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병시중까지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사모님이 준 재산을 사업하는 귀한 아들에게 모두 물려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모님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사모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집안 어른들이 아들만 바라셔서 너에게 소홀했다.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그 말을 듣고 싶으셨다.     

그러나 사모님의 어머니는 사모님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아들 걱정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 사모님은 어머니에 대해 서운함으로 화병이 나서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했었다. 사모님의 어머니는 아들만 자기 자식이고 딸은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같이 있어도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보던 모녀의 관계는 죽음이라는 경계로 끝이 났다.     


아쉬울 때는 딸을 찾지만, 행복할 때는 아들만 찾는 그런 부모가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다. 누구는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고, 누구는 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그냥 엄마의 뱃속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태어난 것뿐인데 무슨 죄를 지었다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을까?     


세상이 많이 바뀌어 지금의 젊은 부모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아들만 찾는 옛날 부모도 존재한다. 그래서 부모는 부모일 뿐 부모라고 모두 성숙한 인격체는 아니다. 딸의 애정을 져버릴 만큼 어리석은 부모라면 그냥 양육자일 뿐이다. 딸의 애정은 당연하고, 아들의 애정은 고마운 선물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부모 재산 가져가는 자식이 따로 있고, 부모 걱정하는 자식이 따로 있단 말인가? 결국 부모가 중심을 잡고 자식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어리석은 부모는 본전 생각과 이기심으로 자식 간에 분란(紛亂)만 일으킨다. 부모는 죽으면 끝이라지만 자식들은 서로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살아간다. 부모는 그것을 바란 것일까! 참! 어리석다.     


자식을 단지 소유물로만 생각하는 부모는 마음에 드는 자식은 가슴에 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식은 가슴에서 지워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식은 부모로부터 똑같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것을 모르고 부모가 되었다면 자식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입혀주어 부모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식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부모가 낳았기 때문에 자식이 태어난 것이니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     


태어난 것만으로 부모에게 감사하기에는 너무 살기 힘들다누군가는 고통의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부모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이미 자식은 부모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다자식이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부모는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     


끝으로 사모님께 말씀드렸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은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롯이 사모님 것이니 아무런 죄책감 없이 행복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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