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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TK Sep 10. 2024

존엄성을 유지한 생존에 대한 고찰 01

문화, 그리고 의식주에 대한 이야기

제2막. 

외계인, 지구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하다.


제2막 1

존엄성을 유지한 생존에 대한 고찰 

문화그리고 의식주에 대한 이야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계인은 숙주의 육체와 점점 더 동기화 수준을 높여갔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세포 하나하나까지 상태 체크가 가능한 단계가 되었다. 외계인은 이 과정에서 묘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새로운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 친숙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스템 수호천사는 외계인에게 혼이 나고 있다. 이 동기화 수준을 높이는 것에 대해 신체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수호천사가 강력하게 제안한 것인데, 박영철의 몸상태가 너무 쓰레기 수준이어서 동기화 수준이 아무리 높아져도 부스터가 안 걸리는 것이었다. 부스터는커녕 세포하나하나가 몇 시간 좀 걸었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아우성치듯 모든 피로도에 대한 동기화만 높아져 외계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칫 부스터를 잘못 걸었다가는 세포나 조직들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 버릴 수 있다는 결과에 당혹감을 느꼈다.


시스템 수호천사 딴에는 지구에서는 아직 개발되지 못한 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 인간 수준 인공지능) 보다도 우수한 존재라고 자부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조사하고 보고한 것인데 혼이 나고 있다. 수호천사는 대한민국이 100세 시대에 진입했다고 열변을 토했다.


"주인님, 지나오는 길에 랜덤 하게 지나가는 지구인들의 기억들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곳 대한민국의 현황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수호천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한민국은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UNCTAD 설립 이후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바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분류 변경은 한국의 경제 발전과 국제적 위상을 인정받은 중요한 사건으로,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발전을 반영하는 결과입니다. 이는 1964년 UNCTAD 설립 당시 최빈국으로 분류되었던 한국이 약 60년 만에 이룬 성과입니다. 참고로, 유엔(UN)은 1945년에 설립된 국제 평화와 안보, 국가 간 협력을 위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입니다. 그 산하 기관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64년에 설립되어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과 세계 무역 균형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들의 경제 발전 단계를 평가하고 분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수호천사는 더욱 자신의 조사를 잘했다는 듯 더욱 격양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또한,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OECD 국가 중 상위권입니다. 첨단 의료 기술의 발전과 웰빙 문화의 확산, 그리고 정부의 노인 복지 정책 강화로 인해 노년층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50대 초반의 남성을 '청년'으로 부르는 사회적 인식까지 형성되고 있답니다!”


외계인은 이 분석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영철의 실제 상태와 수호천사의 통계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었다. 외계인은 박영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어떻게 그의 신체를 망가뜨렸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수호천사, 잠깐만. 근데 너 학습능력이 참 좋구나. 네가 먼저 지구인화 된 건가? 지구인처럼 목소리를 높이네, 이게 아주 네가 주인 할래?” 외계인이 놀리듯 말했다. 그리고 더 심하게 장난이라도 치려는 듯이 매우 정색하는 듯한 어투로 수호천사에게 지시했다. "박영철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게.”


외계인의 지시에 따라 수호천사는 박영철의 신체를 세밀하게 스캔했다. 간은 지방간 증세가 심각했고, 폐는 오랜 흡연으로 인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심장은 불규칙한 박동을 보이고 있었으며, 위장은 만성 위염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뼈는 칼슘 부족으로 약해져 있었고, 근육은 영양실조로 인해 위축되어 있었다.


"보이나, 수호천사? 이것이 현실이야. 극심한 스트레스와 가난, 그리고 불규칙한 생활이 만들어낸 결과지." 외계인의 목소리에는 연민이 묻어났다. 


"사업 실패 후 겪은 경제적 어려움은 그에게 제대로 된 영양 섭취나 의료 혜택을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 가족의 고통을 지켜보며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그의 신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의 기억을 스크린 해서 학습하면서 다 보았을 텐데… 어떻게 그의 신체가 망가져 왔는지… 그저 여기 지구에서 평범이라 부르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조차 할 여유조차 없던 그 기억을 분석하면서, 이 상황을 예측 못했다니…”


수호천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겸연쩍은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개인의 구체적인 상황을 더 세밀하게 분석했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더 주의하겠습니다.”


외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박영철의 몸 상태 분석보고를 확인했다. 100세는커녕,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 10년을 더 버티기도 힘들어 보였다. 외계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몸을 어떻게 해야 할까..." 외계인은 숙주의 몸을 움직여 집안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놀라운 건 숙주의 건강상태만이 아니었다. 오던 길에 보던 화려한 도시풍경은 마지막 도로를 건너자마자 갑자기 공포영화의 배경처럼 바뀌어 버렸다. 


숙주 박영철이 살던 집은 선진국 대한민국이 아닌 후진국 어느 나라 빈민가에나 있을법한 허름하고 낙후된, 박영철 보다도 나이가 많을 것 같은 느낌의 연립주택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 좋아 보이는 반지하 원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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