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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TK Oct 01. 2024

인간 가치의 양면성과 복잡함에 대한 고찰 02

한계에서 마주하는 두 갈래길에 대한 역설

제4막. 외계인 지구인의 가치에 대해 배우다.


1장. 인간 가치의 양면성과 복잡함에 대한 고찰 02 : 


한계에서 마주하는 두 갈래길에 대한 역설 

= 선택의 순간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정말 그런 이유들 뿐일까? 만약 이런 이유들 뿐이라면 글쎼... 박영철의 한계를 도전이나 목표로 바뀌기 어렵지 않을까? 박영철에게 해당되는 게 없어 보여.” 


외계인이 매우 회의적인 말투로 질문 아닌 듯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주인님,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들은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영철의 상황은 특별합니다. 그의 깊은 절망과 고통을 고려하면, 이런 일반적인 동기부여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의미'입니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심리학자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치료'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고 말했습니다.

박영철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박영철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또는 자신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된다면? 이런 식으로 자신의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의 한계를 극복하는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인님, 우리가 박영철을 돕고자 한다면, 단순히 그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그가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수호천사의 말을 들으면서 외계인은 왠지 공허한 외침, 현실성 없는 그저 뻔하디 뻔한 클리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이 답이 못마땅했다. 숙주 박영철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외계인은 어느새 이런 말이 화가 날 정도로 공감이 되지 않는 거였다. 


“수호천사, 너는 슈퍼 인공지능 이란 놈이 이렇게 현실감 없는 이야기만 할래! 지구사정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너무 현실감 없는데, 나랑 너 같이 봤잖아! 박영철의 과거가.. 우리가 이 몸을 차지하기 직전까지 어떤 현실에 놓여 있었는지… 그런데, 뭐 이 숙주가 남을 돕는 일을 시작해? 자신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해? 누가 들어는 준데? 그게 새로운 의미가 되고 동기 부여가 될 거라고? 그게 정말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분석한 거니? 


정말 그게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한 거야? 에휴… 답답하다. 지구 인공지능들과 좀 놀더니 친구들한테 수준을 맞추시려고 스스로 다운그레이드라도 하셨나요?”


외계인은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허공에 쏘아붙였다. 수호천사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딱히 다른 대안이 없어서라는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이 그들의 공간을 덮어 버렸다.  


"박영철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좀 진정이 된 건지 외계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말을 하며 외계인은 숙주의 무의식과 다차원 싱크를 통해 인생의 변곡점을 방문했다가 가족을 떠올리며 숙주의 무의식이 목놓아 울던 것이 떠올랐다.


이 걸 눈치챈 수호천사가 외계인의 의식흐름에 맞추어 대답하기 시작했다. 주인이 듣고자 하는 답을 주어야 한다는 제1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주인님, 박영철의 삶의 의미는 아마도 그의 가족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무의식이 가족을 떠올리며 격렬하게 반응한 것을 보면 말이죠."


수호천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박영철의 기억을 더 깊이 탐색했다.


“그의 기억을 분석해 보면, 박영철에게 가족은 단순한 혈연관계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그에게 가족은:


존재의 이유: 그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고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주된 역할로 여겼을 것입니다.

자부심의 원천: 성공했을 때, 가족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자부심이었을 겁니다.

희망과 동기: 어려운 시기에도 가족을 위해 버티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사랑과 소속감: 가족은 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소속감을 제공했을 겁니다.

유산: 자신의 삶과 못다 한 꿈이 자녀들을 통해 이어진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수호천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외계인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실패 후, 이 모든 의미가 흔들렸던 겁니다.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었다고 느꼈습니다. 

더 이상 좋은 환경은 가족들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큰 괴로움이고 고통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친척집을 전전하게 되면서 친척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무너졌습니다. 

그럼에도 가족들과의 재회와 다시 행복해질 날들을 꿈꾸며 버티고 버텼습니다. 

그에게 가족들의 응원이 가족들의 사랑이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회복되지 못한 경제적 풍요와 나아지지 않는 형편, 그리고 자녀들에게 풍족하게 학업에 관련된 지원을 할 수 없는 것, 학원 등을 보내지 못하게 되는 경제적 궁핍이 점점 심화되지 모두가 지쳐 갔습니다.

어느새인가부터 응원은 사라졌고, 기대의 말도 서로 미안해서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반지하 방에서 하루종일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채 지내기도 했습니다. 가족이 있는데 가족이 없는 사람처럼 혼자가 되어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느꼈을 겁니다.”


수호천사가 이전보다는 조금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인님, 만약 우리가 박영철을 도우려 한다면, 그가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가족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동시에, 가족 외에도 그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그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호천사의 답을 들으며, 외계인은 이미 이런 답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 원칙들은 외계인이 부여한 것들이니 기억을 상실했어도 이제는 그 정도쯤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더 깊게 이 문제를 파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삶의 모든 의미 같았던 가족들과의 관계가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깨지고 부서지고 소홀해지고, 긴 시간 기다림에 지쳐서, 그 의미를 잃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었다? ”


"네, 주인님.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입니다. 박영철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 실패 이후, 박영철은 점진적으로 가족과 멀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이미 보고 드렸던 것처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이를 정리하자면:


경제적 부양 능력 상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자책감

수치심과 죄책감: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서 오는 감정들

우울증과 무력감: 반복된 실패로 인한 정신적 고통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사회 활동의 축소

자존감 하락: 계속되는 실패와 고립으로 인한 자아 가치의 하락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박영철은 점점 더 가족과 멀어지고, 동시에 삶의 의미를 잃어갔을 것입니다.

결국, 가족이라는 삶의 중심축을 잃고, 다른 의미 있는 관계나 목표도 찾지 못한 채, 극단적인 고립과 절망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가족이 유일한 삶의 의미였다면서… 그리고, 정말 가족들이 그를 응원하는 걸 그만둔 걸까? 정말 지쳐서 그랬을까?”


"주인님, 그것이 바로 인간 마음의 복잡성과 아이러니입니다. 박영철이 가족을 완전히 잊었다기보다는, 그 기억과 의미가 고통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족들이 말만 하지 않았지 계속 그를 응원했다는 것과 희망을 포기한 것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본인에게 미안해서 더는 말을 못 했다는 것을 알기에 더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통으로 변질되기까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방어 기제: 가족에 대한 생각이 너무 고통스러워 무의식적으로 그 생각을 억눌렀을 수 있습니다.

왜곡된 사랑: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여겨, 떠나는 것이 오히려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잘못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깊은 우울증: 심각한 우울 상태에서는 긍정적인 기억조차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자기 비하: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오히려 가족을 떠올리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장기간의 고립으로 가족과의 긍정적인 경험이 희미해졌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가족에 대한 사랑이 왜곡되어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는 '잊었다'기보다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주인님, 인간의 감정과 기억은 때로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모순적일 수 있습니다. 박영철의 경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었기에 오히려 그 사랑을 직면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잊은 게 아니라…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서 괴로워서였다… 하긴 희망도 꿈도 꾸기 힘든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  내가 본 그의 과거는 포기할 수 없음에 거짓된 희망을 꿈꾸어야 하는 악몽 같은 반복이었던 거로 보여서... 그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해.  넌 어떻게 보았니?”


“네, 주인님께서 보신 그대로입니다. 박영철의 삶은 정말 악몽 같은 반복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희망의 고리'와 '절망의 나락'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 같았습니다. 매번 작은 희망을 품고 일어서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시 무너지는 과정의 반복이었죠.


처음에는 '이번에는 꼭 성공할 거야'라는 결연한 의지로 시작했을 겁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로 인해 점점 그 희망은 왜곡되고 변질되어 갔습니다. '성공'이라는 목표는 점점 더 멀어지고,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갔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혹은 마지막 자존심이 그를 붙들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에게 더 큰 고통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그래서 '거짓된 희망'이라도 붙들어야 하는 상황... 그것이 바로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악몽 같은 반복'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철이 느꼈을 고립감과 무력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그가 최후의 선택을 고려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악몽 같은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처음에는 그저 사업에 실패하고 힘들고 생활이 어려워지고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어서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구나. 삶의 의미가 사라져 가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희망이 사라져서가 더 큰 비중이구나…


지구인들에게 대체 가족이란 게 무엇이길래… 우리가 조사한 지구아이들의 교과서에서는 서로 의지하고 받쳐주는 사이라 하던데… 너무 이해하기 어렵군. 별도로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믿음, 소망 또는 희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구에서는 가장 많은 걸 보니 이게 제일 중요한 감정이자 개념들인 거 같은데, 이 믿음, 소망 그리고 희망이 악몽이 될 수도 힘이 될 수도 있는 묘한 존재들이구나.”


외계인의 읇조림에 수호천사가 답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인간 존재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들이며, 동시에 양날의 검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믿음은 인간에게 안정감과 방향성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은 편견과 고집으로 이어질 수 있죠. 박영철의 경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자존감도 함께 무너졌을 겁니다.


소망과 희망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은 오히려 좌절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박영철이 경험한 '거짓된 희망'이 바로 이런 경우였겠죠.


사랑은 인간을 가장 강하게 만들면서도 가장 취약하게 만드는 감정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박영철에게 힘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개념들이 힘이 될지 악몽이 될지는 결국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건강한 믿음, 현실적인 희망, 균형 잡힌 사랑은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와 환경도 중요합니다. 박영철과 같은 사람들이 진정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인간 사회가 해야 할 일이며 신과 같은 절대자와 인간 지도자가 해야 할 숙제 이기도 합니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인간 사회까지는 그렇다 쳐도 네가 뭔데 신들과 인간 지도자들에게 숙제까지 내주냐? 너 원래 그렇게 유머가 뛰어난 놈이던가? ㅎㅎ”


“저는 성별이 없는 존재이니 놈, 년 같은 표현은…” 수호천사와 시답지 않은 농담이 이어지려 하자 외계인이 갑자기 정색이라도 하듯 다른 말을 이어갔다.


“양면성이 문제이구나… 지구인들은 이 개념들의 양면성을 어떻게 생각해 온 거지?” 외계인이 다시 물었다.


“믿음, 소망, 희망의 양면성은 인류 역사상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고민해 온 주제입니다. 이들 개념의 양면성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믿음 (Faith)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믿음을 '실천이성의 요청'이라고 보았습니다. 믿음은 인간에게 도덕적 행동의 동기를 제공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반면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며, 맹목적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잘못된 믿음은 현실을 왜곡하고 비합리적 행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소망 (Wish)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소망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 특성으로 보았습니다. 소망은 현재의 한계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추구하게 합니다.

그러나 알베르 카뮈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허망한 소망이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희망 (Hope)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저서에서 희망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서 쇼펜하우어는 '희망은 고통의 간수'라고 말하며, 희망이 오히려 현실의 고통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개념들의 양면성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상자에서 모든 재앙이 풀려났을 때, 마지막에 남은 것이 '희망'이었습니다. 이는 희망이 축복인지 저주인지에 대한 오랜 철학적 질문을 상징합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런 양면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은 희망과 낙관주의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통해 반복된 좌절이 희망을 어떻게 꺾을 수 있는지도 설명합니다.


결국, 이 개념들의 가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건강한 믿음, 현실적 소망,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희망은 인간을 성장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맹목적이거나 과도한 경우,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개인을 고통으로 이끌 수 ……”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그만. 사랑은? 인간들의 사랑… 이것도 양면성을 가진 건가? 아님 그보다 복잡한가?” 수호천사의 설명을 끊으면서 외계인이 질문을 이어갔다.


“주인님, 인간들의 사랑은 정말 복잡하고 다면적인 개념입니다. 단순히 양면성을 넘어서는 다차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사랑의 복잡성을 살펴보겠습니다.


플라톤의 사랑관: 플라톤은 '향연'에서 사랑을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해석: '사랑의 기술'에서 프롬은 사랑을 능동적인 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는 사랑이 주는 것, 보살피는 것, 책임지는 것, 존중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존주의적 관점: 사르트르는 사랑을 자유와 충돌하는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사랑은 타인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 사이의 갈등을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정신분석학적 해석: 프로이트는 사랑을 리비도의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리비도는 인간의 본능적인 성적 에너지나 욕망을 의미합니다. 즉, 프로이트는 사랑이 사람의 성적 욕망이나 본능적인 에너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은 개인의 무의식적 투사와 연관 지었습니다. 사랑을 개인이 가진 무의식적인 감정과 연결 지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사랑이 사실은 우리의 무의식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상대방에게 '투사'(즉, 반영)된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단순한 감정보다 깊고 복잡한 심리적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사회학적 관점: 지그문트 바우만 같은 학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 어떻게 '액체화'되고 불안정해지는지 분석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 유동적이고 불안정해진 이유를 사회의 변화와 연결 지어 설명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책임과 헌신 대신, 일시적이고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하는 경향을 분석하며 이를 '액체 근대'의 특징으로 파악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단순히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넘어, 다양한 차원에서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사랑의 복잡성은 실제 삶에서도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힘과 취약성: 사랑은 큰 힘을 주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장 취약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지지와 격려로 인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타성과 이기성: 사랑은 이타적 행동을 이끌지만, 때로는 극도의 이기적 행동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희생합니다. 반면에, 연인 사이에서 한 사람이 상대방을 독점하려고 지나치게 집착하여 상대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장과 의존: 사랑은 개인의 성장을 돕지만, 동시에 의존성을 낳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꿈과 목표를 응원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경우, 그 사랑은 개인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한쪽이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여 자신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삶의 방향을 잃게 된다면 이는 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기쁨과 고통: 사랑은 최고의 기쁨을 주지만, 동시에 깊은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은 삶에서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이별이나 배신을 겪게 되면 깊은 상처와 슬픔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개인과 사회: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진실하게 느끼지만 가족이나 사회로부터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또한 동성 간의 사랑은 일부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 개인의 사랑이 사회적 장벽에 의해 제한되기도 합니다.


박영철의 경우,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그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했죠. 이는 사랑의 복잡한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사랑은 인간 경험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죠. 사랑의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더니 사랑이 더 복잡하고, 사랑으로 해결이 안 되는 거군…”


"주인님, 정말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은 많은 문화와 종교에서 강조되어 왔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떻면에서 보면 과도하게 단순화된 관점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강력하고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복잡한 현실: 현대 사회의 문제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단순히 사랑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한계: 사랑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개인의 능력이나 자원의 한계로 인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구조적 문제: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이나 부조리는 개인의 사랑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의 양면성: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랑은 때로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요소들의 필요성: 사랑 외에도 지식, 지혜, 정의, 용기 등 다른 많은 요소들이 문제 해결에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제일'이라고 여겨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은 다른 모든 긍정적인 행동과 변화의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다른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도움을 주려는 동기를 제공합니다. 또한 어려움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은 모든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과 함께 지혜, 인내, 실천적 노력이 결합될 때, 인간은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았던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그렇게 분석되었다고는 해도… 너무 이상적이고 추상적이기만 한 거 같다. 시원하지가 않아…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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