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선 타인처럼 느껴지고,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생기 없는 눈빛을 보고도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방 안은 어질러진 채 방치되어 있고,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도 치우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태만해진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나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 하는 무거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씻는 것조차 거대한 미션처럼 느껴져 이불 속으로 파고들 때, 세상의 활기찬 소음들은 담장 너머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만 들립니다.
"나 왜 이렇게 한심하게 살고 있을까."
자조 섞인 혼잣말이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지만, 몸은 여전히 중력에 패배한 듯 침대 밑바닥으로 가라앉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게으름이라 부르겠지만, 내게는 이것이 영혼의 탈진이자 자아의 일시적 정지 상태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너무나 깨끗하게, 단정하게,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어 왔던 시간들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스스로를 방치한다는 것은 사실, 더 이상 타인의 기대라는 감옥에서 나를 가꾸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반항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주인을 잃고 길가에 버려진 낡은 외투처럼, 비를 맞으면 맞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나를 그냥 내버려 두고 싶어집니다. 규칙적인 식사도, 적당한 운동도, 성실한 사회적 관계도 모두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 밑바닥의 정서는 참으로 쓸쓸하면서도 기묘한 해방감을 줍니다. 더 이상 잘 보일 사람도 없고, 증명해야 할 가치도 없다는 절망이 주는 역설적인 편안함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위로 올라가기만 하던 관성이 멈추고, 이제는 바닥으로 떨어져 진흙탕에 구르는 시간 말입니다. 방치된 방 안에서 먼지가 쌓여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내 마음의 먼지들도 함께 바라봅니다. 닦아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은 지저분하고 엉망이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뒤늦게 배웁니다. 완벽한 자기 관리는 우리를 빛나게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투명한 벽이 되기도 합니다.
"내일은 정말 좀 씻고 정리해야지."
공허한 다짐을 수백 번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제자리인 내 모습이 밉기도 하지만, 이 모습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나의 파편임을 인정하려 합니다. 식물이 시드는 계절이 있듯, 사람의 마음도 수분이 빠져나가고 시든 잎을 떨어뜨리는 시기가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방치하는 이 시간은, 사실 가장 원초적인 모습의 나를 대면하는 신성한 제의일지도 모릅니다. 치장하지 않은 얼굴, 꾸미지 않은 언어, 숨기지 못한 나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순간에 우리는 진정으로 정직해집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외치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강요하지만, 때로는 자신을 방치함으로써 오는 그 허무함 속에서 진짜 휴식을 얻기도 합니다.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만이 땅을 딛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듯이, 나를 놓아버린 이 시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동력이 될 것입니다. 헝클어진 이불 속에 파묻혀 천장을 바라보는 이 고독한 시간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음을 믿고 싶습니다.
방치된 시간만큼 내 안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쌓이고, 다시 밖으로 나갈 에너지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억지로 자신을 가꾸려 애쓰지 마세요. 지금은 그저 낡은 외투처럼, 조용한 방 한구석에 자신을 가만히 눕혀두어도 좋습니다. 어둠이 빛의 부재이듯, 방치는 돌봄의 일시적 부재일 뿐 영원한 상실은 아니니까요.
언젠가 다시 거울 앞에서 미소 지으며 머리를 빗어 넘길 날이 오겠지만, 오늘의 이 초라한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내버려 둔 당신의 오늘은, 치열했던 삶이 잠시 내리는 비상벨입니다. 그 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방치된 채로 살아남았음을 감사해봅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낡은 허물을 벗어던져야 하고, 그 허물을 벗는 과정은 언제나 이토록 남루하고 고통스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끝난 뒤에 만날 당신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단단한 눈빛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