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 때

by 동이

매일 걷던 익숙한 골목길이 갑자기 낯선 이국의 풍경처럼 느껴지고, 내 이름 석 자가 생경한 단어처럼 입가에 맴도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족의 얼굴이 가면처럼 어색해 보이고, 내가 사는 집의 가구 배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간처럼 다가올 때의 그 기묘한 소외감. 익숙함이라는 견고한 성벽이 무너지고 세상이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모습으로 나를 덮쳐올 때, 심장은 서늘한 공포로 가득 찹니다. 내가 알던 세계의 지도가 순식간에 불타 사라진 기분,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유령이 되어 허공을 유영합니다.

"이곳은 어디지? 나는 누구와 함께 있는 걸까?"

이런 실존적인 물음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면 평범했던 일상은 순식간에 공포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변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데자뷔의 반대인 '자메뷔(Jamais Vu)'라고 부르지만, 그 학술적인 용어가 나의 이 막막한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낯설음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 삶의 모든 의미를 지워버립니다. 직장에서 늘 하던 업무가 외계인의 언어처럼 이해되지 않고, 사랑하는 연인의 목소리가 기계음처럼 차갑게 들리기도 합니다.

사실 이 낯설음은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렌즈가 갑자기 초점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익숙함에 젖어 감각이 무뎌진 우리에게, 우주가 던지는 일종의 충격 요법일지도 모릅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기적적인 우연의 산물이었음을,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위태로운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신호입니다.

낯선 풍경 속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 들 때, 나는 가만히 내 손바닥을 내려다봅니다. 지문이 그려진 이 작은 살점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확신인 양, 그것을 만지고 또 만져봅니다. 익숙한 것들이 등을 돌릴 때 우리는 비로소 '고독'의 진짜 민낯을 마주하게 됩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어떤 매뉴얼도 통하지 않는 진공 상태의 고독 말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낯설음은 우리에게 세상을 처음 보는 아이의 시선을 선물합니다. 늘 보던 가로수가 이토록 기이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가졌었는지, 평범한 거리의 소음이 이토록 복잡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낯설어짐으로써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인 것처럼 대해보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낯선 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다시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책장의 책등을 손가락으로 훑어보고, 찻잔의 매끄러운 감촉을 처음 느끼는 사람처럼 감탄해 봅니다. 지도가 사라졌기에 우리는 비로소 '탐험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정해진 길로만 다니던 관성을 버리고, 미지의 땅을 밟는 설렘으로 일상을 다시 조립해 나갑니다. 낯설음은 두려운 파도이기도 하지만, 우리 삶의 찌든 때를 씻어내는 정화의 물길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아 외로워질 때, 그것은 당신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산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좁은 우물 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광활한 우주의 낯설음을 수용하는 과정입니다. 이제 당신은 이전의 당신과는 다른 눈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일상의 이면에 숨겨진 신비를 발견하는 눈 말입니다.

길을 잃었다는 공포를 내려놓고, 그 길 잃음 자체를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여 보세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듯 나의 일상에게 인사를 건네고, 어색한 악수를 나누어 봅니다. 서서히 풍경들이 다시 당신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사물들은 제자리로 돌아와 당신을 환영해 줄 것입니다. 다만 그 재회는 예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아는, 깊고 넓은 지혜를 가진 여행자가 되었으니까요.

낯설음의 안개가 걷히고 나면, 당신이 마주할 풍경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입체적인 색채로 빛날 것입니다. 고통스러웠던 이질감의 시간들이 사실은 당신의 감각을 예민하게 갈고 닦아주던 연마의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낯선 그 지점이 바로 당신의 새로운 전설이 시작되는 출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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