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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지 Oct 20. 2024

유자 토마토 上

 이별한 다음 날. 공교롭게 친구 강과 약속이 있었다.


“나 헤어졌어.”     


 점심이 지날 무렵 문자 한 통 보내놓고 오래간 목욕을 했다. 개운한 몸은 껍데기일 뿐, 마음은 갈피 없이 복잡했다. 엄마가 떠준 청록색 뷔스티에를 입고 문을 나섰다. 하늘은 회빛. 자잘한 빗방울이 나렸다. 종일 끅끅대며 울던 게 꿈처럼 느껴졌다. 도톰히 부은 눈은 화장으로 가려질 리 없었고, 헤어지는 마당에 그 애에게 여름감기까지 옮아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우리는 강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술 먹을래? 응. 강은 제각각 엉겨붙은 각얼음을 야무지게 부수어 하이볼을 만들었다. 레몬 하이볼과 피치트리 하이볼. 그리고선 전날 재워뒀다는 ‘유자 토마토’를 꺼냈다. 먹색 국그릇에 담긴 유자 토마토. 일전에 텐동 집에서 먹은 유자 토마토가 감질나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상큼하게 올라오는 유자 향과 퍼석거리며 톡톡 터지는 토마토. 강의 향긋한 위로를 꼭꼭 씹어 삼켰다.     


 한밤중에 나는 그 애를 찾아갔다. 할 말이 있어서도, 붙잡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얼굴이 보고 싶었다. 주광색 조명 아래 연인이 아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줄줄 흘러 새벽 2시. 비 오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그 애의 검은색 장우산을 빌려 밖으로 나왔다. 수선집 대바늘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장대비였다. 종아리에 닿는 빗물이 차고 아렸다. 얼른 집에 가 마음 놓고 울고 싶었다.  

   

 며칠 뒤 나는 ‘유자 토마토’를 만들었다. 빨갛고 단단한 토마토 세 알을 골라 깨끗이 씻은 다음 초록색 꼭지를 베고 뒤집어 십(十)자로 칼집을 냈다. 끓는 물에 토마토를 30초가량 데치다 껍질이 노래지기 전에 건져 얼음물에 담갔다. 미리 칼집을 낸 덕분에 토마토의 껍질은 쉽게 일어났다. 슥슥 껍질을 벗기고 보드라워진 토마토를 먹기 좋은 크기(나는 8등분 하였다)로 썰었다. 유리 용기에 토마토를 담고, 유자청을 꺼냈다. 토마토 한 알 당 유자청 한 스푼, 물 한 스푼의 비율로 소스를 만들고 토마토에 고루 흩뿌렸다. 유자 향 솔솔 나는 토마토를 보고 있자니 부쩍 마음이 부푼 느낌이 들었다. 하루 동안 냉장고에서 잘 숙성시키면 맛있는 유자 토마토가 완성된다. 조금의 수고만 있다면 언제든 향긋한 마음을 맛볼 수 있다. 손에 얼굴을 묻자 시큼한 토마토 냄새가 났다.          


PS. 유자 토마토의 레시피는 친구 강으로부터 전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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