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과 계단
밤이 찾아오면 온 세상은 어두컴컴해진다. 반지하를 나설 수 있는 계단은 그에게 있어선 너무도 어두웠다. 밖을 나서보려 해도 계단 하나 제대로 올라가지 못했다. 한 발 내디뎌보려 해도 결국 의미 없을 뿐이었다. 언제까지고는 이 반지하방 아래에 처박힌 채 곪아 썩어갈 것이다.
검붉게 물든 눈 위로 다시금 눈송이가 쌓인다. 뜨겁게 타오르던 피는 식어가고 서서히 차갑게 변해간다. 작은 경련이 흘렀다. 저 너머에서 들려오던 총성도 어느 순간 멎어버렸다. 어쩌면 저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확인 사살을 하기 위해 총을 겨누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는 흩어져가는 의식을 간신히 끌어안았다. 이젠 더 이상 그 어떤 고통과 아픔도, 쓰라림도 없었다. 가슴을 에는 듯이 느껴졌던 감각들은 흐릿해졌다. 여기서 그만 다시 눈을 감곤 흩어져가는 의식을 놓으면 모든 게 끝날 터이다.
떨리는 다리를 계단으로 내밀었다. 한밤중 짙은 어둠은 희미한 새벽녘 속에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올라갈 용기는 나지 않는다. 허벅다리에 맞은 총상이 저렸다. 다리가 시려올 때마다 다시 그 겨울로 되돌아간다. 목발을 내 짚어 계단을 오르려 했으나 한순간 중심을 잃곤 쓰러졌다. 그는 다시금 눈을 감아 그때의 겨울로 돌아간다.
눈밭 한가운데로 어느 작고 초라한 동사자가 있다. 주변엔 검붉은 피가 얼어붙었고, 몸뚱이 위론 눈송이가 쌓인다. 의식은 잠을 자듯 천천히 멀어져 갔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붙이면 오래간만에 깊이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몸 위로 덮이는 눈송이는 꼭 이불같이 느껴진다.
나자빠진 채로 가만있으니,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동상 탓에 떨어져 나간 발가락의 빈자리에서 유난히 바늘로 찌르는 듯 고통스러운 한기가 스며들었다. 조금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기대었다. 습기 서린 콘크리트의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넘어진 충격 탓인지 코피가 흐른다. 흐른 피는 콘크리트에 떨어지곤 습기와 뒤섞여 희미해졌다. 그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주변은 너무도 조용하기만 했다. 정적 속에 숨이 틀어 막혔다. 주위를 둘러싼 벽은 점점 더 좁아져 갔다. 그는 다시 한번 저 계단 너머를 올려다보았다. 한밤을 지나 새벽녘으로 물들여졌던 세상은, 이제 선명한 노을이 떠오르며 황금빛으로 번져갔다. 그는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보았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흐트러진 목발을 다시금 끌어안고. 지상과 이어진 반지하방의 문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노을빛을 바라보았다. 또 한 번 내디딘 다리가 미끄러졌다. 난간을 부여잡았다. 흐른 코피 탓에 입속이 아렸다. 그는 시선 끝에 걸친 노을빛이 눈꺼풀 너머에서도 아른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