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4주년 소나기

중년 백수 탈출기

by 일로

오늘은 결혼 24주년이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 만나 2001년 6월 16일 결혼을 했다.

외식하자고 해도 싫다더니 한강 러닝을 간다고 하니 따라나섰다. 막내를 논현역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잠원 한강공원으로 가서 잠수교까지 달렸다. 날씨가 흐려 좋았는데 턴할 때 쯤 소나기가

마구 쏟아졌다. 난생처음 흠뻑 비를 맞으며 아내와 달렸다.


어머니집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해 24년 동안 거짓말 같은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결혼한 지 2년도 안돼 증권회사에서 돈을 다 잃고 퇴사해 무일푼으로 부동산을 시작했다.

7년 정도의 공인중개사를 한 후 요가원 3년, 고시원 6년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요가원 본사, 고시원 건물주와의 소송등 많은 우여곡절의 사건들이 있었지만 아내와헤쳐

나왔다. 그런 시련들을 극복해 가면서 아이들은 커갔고 우리 살림도 불어났다.


전혀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못한 형태로 삶은 흘러갔다. 지나고 돌아보니 모든 선택들은 다 우연

이었다. 어느 것 하나 내 계획과 노력만으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것이 축복이었던 것 같다.

그 모든 행운의 퍼즐 조각 중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지금의 우리 가정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아내와 난 소나기를 맞고 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려던 계획은 사라졌지만 함께 맞은 소나기는 기억될 것이다.


지금 잠시 비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더위에 오히려 시원했고 둘이어서 즐겁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기념일이 될 것 같다고..

아내가 뾰로통 대꾸한다. 아이고 기억에 남겠네.. 차라리 한강에 빠트리지 그랬어...

돌아보면 힘들었을 때 서로 애처로워하던 시절이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결혼 24주년 소나기가 우리 결혼생활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겨지길 기대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