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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19. 2024

꼰대 아빠의 반성

결혼 21년 차 일기

꼰대 아빠의 반성    2021년   12월  20일


 오늘도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한 아침이었다.

아침에 막내가 학교에서 배구 결승이 있다고 해서 일찍 일어났는데 등교 취소 문자를 받았다. 일어난 김에 청담 공원으로 운동을 갔다가 빵을 사들고 들어왔다. 오는 길에 어머님 집에 들러 규은이 최초 합격된 대학들 소식을 알리고 집에 와서 빵들을 식탁에 풀어놓고 커피와 먹고 있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즐거운 아침 식사를 하다가 대권 후보들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불편해져 자리를 뜨려 하자 아내가 붙잡았다. 할 수 없이 식탁에서 아이들과 함께 빵을 먹으며 대선 후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 정치인 얘기에 감정 조절이 잘 안돼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다가 사달이 났다.


 둘 다 별로지만 여당 후보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 같아 문제라고 하자, 큰 딸이 오히려 복지국가가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숨이 막히며 더 이상 말을 하면 감정이 주체 안 될 것 같아 자리를 일어났다.

이래서 따로 먹으려 했다며 거실 컴퓨터 책상으로 갔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행동이었고, 아빠로서 아이들 앞에서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알고 있는 딸이 답답했고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정치 이슈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요즘 젊은 애들이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감정이 올라왔다.


 그렇게 거실 책상에 가서 앉으니 식탁에 있던 아내와 아이들도 각자 방으로 들어가 버려 평화롭던 아침이 싸늘해졌다. 아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혼날 참으로 얘기를 꺼내니 역시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내는 나에게 왜 그렇게 우선순위가 없냐며 책망했고, 어쩌자고 정치 얘기로 아이들을 공격하며 집안 분위기를 망치느냐고 서운해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어하는 딸을 비난하는 못난 아빠의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중으로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고 앞으로 정치 얘기를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다짐을 했다.

누가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소시민임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내 가정의 행복을 지켜 나가는 현명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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