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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21. 2024

단칸방 신혼

기억나는 부부싸움들

1.  단칸방 신혼


 34살에 결혼했다.

그 당시에는 꽤 늦은 나이로 이미 친구들은 서른 전후에 다 결혼을 했고, 형들은 모두 25살에 결혼을 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10년 넘게 지내다 보니 명절 때 처가로 가버리는 형들과 노총각이라는 생각에 깊은 외로움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내 운이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 간절함 속에서 만난 아내는 구세주와도 같았다. 그때까지 결혼할 여자를 만날 수 없었던 이유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니고 있던 아내의 세 가지 조건 때문이었다.

셋째 딸, 피아노, 아르바이트..


 데이트 첫날에 집을 바래다주다 떨리는 마음으로 피아노 칠 줄 아느냐고 물어보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했다는 말을 듣고 가던 길을 돌려 근처 한강공원으로 가서 프러포즈를 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면 안 되었고, 내 운명을 믿고 몸을 던져야 했다. 바로 상견례를 하고 결혼을 했지만

결혼 준비가 전혀 없어 어머니 집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해야 했다.

 

 증권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결혼 6개월 만에 돈을 다 잃고 퇴사를 했다.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 공부를 하다 우연히 공인중개사 준비도 하게 되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를 임신하자 아내는 어머님 집에서 이사를 나가자고 했다. 장모님이 성수동 아파트를 샀는데 우리가 몇 년 싸게 전세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태어난 동네를 평생 떠난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독립이 두려웠던지, 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싫다고 싸웠다.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면 어디를 가도 만족할 수 없고, 처가 덕은 보기 싫다는 이상한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렇게 며칠 밤을 싸우다 어느 날 우는 아내를 내버려 두고 홧김에 새벽에 집을 나왔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아내가 말한 아파트에 가보았다. 새 아파트라 그런지 외관과 담 벽이 근사해 보였고

왠지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못난 부부싸움을 며칠간 하며 아내를 힘들게 한 후 이사를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아내가 얼마나 내가 원망스럽고 답답했을지 상상이 간다.


 나는 어려서부터 살던 어머니 집에서 아무런 불편이 없었고, 결혼까지 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아내는 독박 육아를 하며 몇 년째 백수로 도서관에 다니는 남편과 막막하고 힘든 나날이었을 것이다.

남편 공부하는데 신경 쓰이게 한다며, 당신 때문에 도서관에 가도 집중을 할 수 없다고 싸웠다.

내 생각이 백 퍼센트 맞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린 아내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내는 대학을 막 졸업한 나이였지만 다행히 인내심이 많아 그런 나를 크게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때 그렇게 전세금 1억의 목돈이 만들어졌고 비로소 독립된 진정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내 나이 삼십 대에는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던지,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조차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아내와 나이 차가 많지 않았다면 매일매일 부부싸움을 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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