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백수 일기
어제는 아내와 성수동에 오픈한 '작가의 여정"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장에 다녀왔다.
쉬는 날이고 성수동이 무척 핫해져 겸사겸사 아내와 가을 나들이를 하고 싶어 예약을 해두었다.
"부부싸움 백서" 연재도 마침 끝냈고, 우연히 브런치 작가로 뽑아줘 중년 백수 생활에 큰 활력을 준 회사가 하는 일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아내 반응이 시큰둥하더니 오전까지도 꼭 가야 하냐고 해 겨우 달래어 전철을 타야 했다. 무엇보다 아내는 사람 많은 곳을 질색하고 이상하리만큼 성수동에 가는 걸 싫어한다.
함께 카페나 맛집 가는 걸 좋아해 성수대교만 건너면 되는데도 아내와 간 적은 손에 꼽고 최근엔 거의 없었다.
신혼 때 성수역 근처 아파트에서 살 때 힘들었던 기억이 많아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파트 건너편 공장지대는 귀신이 나올 것 같았기에 팝업 전시장 위치를 확인하며 한가할
줄 알았다. 아내와 서울숲역에 내려 성수역을 지나 걸어가면서 천지개벽한 동네와 끝없는 인파에 아내도
놀라워했다. 내가 굉장하다고 설레발을 떠니 아내는 사람들이 많아 별로라며 전시장을 찾아갔다.
예약 시간이 남아 맞은편 카페에 갔다가 2층 매장에서 옷들을 쇼핑하더니 기분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시간 맞춰 전시장을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라며 아내 눈치를 살펴야 했다.
왠지 젊은이들 사이에 껴서 주책을 떠는 것 같아 아내에게 미안해하며 정신없이 둘러보고 있었다.
아내는 먼저 보고 나간 줄 알았는데 안쪽 구석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뭘 하나 가보니 내 책 표지를 그리고 있었고, 다 그린 후 옆 벽면에 세워 두는 것이었다. 책도 싫고 오기도 싫다고 하더니 용케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내가 신기방기했다.
이 맛에 이 여자하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 장구는 뭐냐고 물으니 권투 글러브라고 하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쪽 눈이 멍들어도 행복해하고 있는 모양이 딱 내 모습이다.
내 아내는 이런 여자이니 어떤 투정도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