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십에 읽는 흑역사

#7. 오해야, 담배는 처음이야!

by Peregrine

1995년


처음으로 사립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사립유치원은 교사의 경력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사립유치원을 다니면서 5년 뒤, 10년 뒤의 나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반면에 직장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공립유치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졸업하는 해에 순위고사를 준비하였으나 그해에 유아교육과는 그전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아직 임용되지 않은 교사가 많아서 시험 자체가 없었다.

.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시험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모교에서 조교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유아교육과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나와 동기인 경진이와 함께 순위고사를 준비하였다. 경진이도 천주교계 유치원에서 1년 동안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간혹 경진이도 부속유치원에서 연구를 도와서 교실에서 아이들을 관찰하기도 하였지만, 우리 둘 모두 궁극적인 목표는 올해는 유아교사를 뽑는 순위고사가 있고, 그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교일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하여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경진이와 합류하였다. 보통 11월에 시험공고가 나오는데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시험공고일로부터 1년 전에 해임보고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유치원의 졸업이 2월이라 졸업을 마치고 일을 마무리하고 사직을 하고 나면 유치원이 위치한 해당 교육청에 해임보고가 2월에 되기 마련이다. 11월부터 저는 퇴사할 것이니 해임보고를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해주십사 현직 원장에게 부탁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떠날 계획을 하고 있다고? 마음이 떠난 자가 몸만 여기 있는 건가? 실제로 공립유치원에 취직하려면, 사직한 해에는 시험을 못 보고 그다음 해에 시험을 볼 수 있으므로 2년을 준비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도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10월 초에 경진이와 나는 패닉이 되었다. 경진이가 공중전화로 관련기관에 문의를 하였다. 나름 경진이가 우리의 상황을 항의하듯 호소하였더니,


“사정은 알겠는데, 저희도 응시 자격이 되는 분들 중심으로 순위고사를 진행합니다. 꼭 마흔 하나 되신 분이 왜 나는 안되느냐고 따지시는데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공무원시험의 나이제한에 걸려 우리와 같은 하소연을 하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졸업하는 해에는 순위고사가 없었고, 1년의 교사 경력을 쌓고, 8개월가량 순위고사를 준비했는데, 응시 자격이 안된단다.




허탈한 마음에 우리 둘은 자주 가는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따뜻한 차로도 우리의 헛헛함을 달랠 수는 없었다. 갑자기 내가 제안했다.


“경진아, 우리 담배 한번 펴볼까?”


갸우뚱하면서도 경진이도 동의하였다. 카페에서도 담배는 팔았다. 라이터는 어떻게 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여간 둘이서 담배를 난생처음으로 피우고 있었다.


카페 문이 열리면서 거기에 딸린 벨이 울려서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수현이가 들어서고 있었다. 수현이를 본 나도 놀랐지만, 담배를 쥐고 있는 나와 경진이를 본 수현이도 놀란 듯 움찔하곤 자연스럽게 우리 탁자로 다가왔다.


“언니, 오늘 운동하러 가는 날인데 깜박하고 언니랑 약속 잡아서, 알려주려고 잠시 들렀어요.”


수현이가 우리 탁자로 슬로모션으로 다가와서 마치 물속에서 멍멍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힘겹게 알아듣고는,

“어어, 어, 그래!” 어눌하게 내가 대답하였다.


수현이가 다시 슬로모션으로 돌아서서 카페를 나가는 모습을 경진이와 나는 미동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다시 벨이 울리는 소리에 마치 체면에서 깨어난 듯 고개를 떨치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어, 야! 내가 깜박 잊었다. 오전에 유치원에 들렀을 때, 수현이한테 내가 오늘 밥 산다고 여기서 만나기로 했었거든, 하도 정신이 없어서 까맣게 잊었네.”


“어휴, 야! 쟤는 우리가 원래 담배 피우는 줄 알겠다야.”


수현이는 1년 후배로 부속유치원 막내 교사였고, 나는 유아교육과 막내 조교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유치원과 유아교육과에서 서로 고생하니까 식사나 하자고 한 약속을 까맣게 잊었다니! 담배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펴 본 거였는데, 수현이가 물어보지도 않는데 내가 먼저 가서

“수현아, 그거 오해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략 난감하였다.

keyword
이전 07화오십에 읽는 흑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