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Wherever You Go, There You Are!
1995년
“나 떨고 있니?” 우우우우우~~. 생애 첫 비행기에 올라타려고 짐이랑 왼손에 쥔 여권사이에 끼워 둔 비행기 보딩패스를 확인하곤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대사였다.
유치원 교사를 하던 1994년엔, 월급날이 되면 원장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두둑한 월급봉투를 소중하게 받아서, 친구인 심선생님과 피자헛에서 배 터지게 피자와 샐러드를 먹었다.
가을에 접어들어서는 유치원에서 퇴근하자마자 다시 모교의 도서관에 가서 병설유치원 순위고사 준비를 하였다. 사립유치원에서는 경력이 쌓이면 그 노하우와 숙련된 지식으로 우대를 받기보다는 높은 임금으로 오히려 그 지위가 보장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반면에 공립유치원은 안정적인 지위가 보장되는 것이 큰 장점으로 여겨졌다. 물론 교과목에 따라 또한 현직 교사의 수에 따라 1년에 1회 순위고사가 있을지 여부는 연말에 결정이 되고, 대학교 4학년때에도 시험 준비를 하였지만, 순위고사로 선발된 교사들도 모두 임용이 되지 않아서 그 해에는 유아교육과는 시험이 없었다. 자연스레 사립유치원에 취업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준비는 해야 될 것 같았다. 물론 현직 교사로서 순위고사를 치르려면 사립유치원 교사를 사임한 지 1년이 지나야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아마도 사립유치원 교사수급의 안정을 위한 조치라고 여겨진다.
1995년 2월 말에 유치원을 그만두고서는 순위고사를 준비하기 전에 미국배낭여행을 계획하였다. 얼마 뒤, 지인을 통해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대학을 갖 졸업하신 선생님을 보조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배낭여행으로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 선생님을 도와 학년초를 준비해 주었다.
유치원을 1년 동안 다니면서 모아놓은 돈을 아낌없이 더 정확하게는 미련 없이 써서 여권을 발급받고, 미국 입국비자를 받고, 30일 동안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그레이하운드 패스를 사서 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가이드 관광이 아니어서 모든 일정이 융통성이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스스로 안전을 기해서 항상 긴장한 상태였다. 저렴한 유스호스텔에 머물면서는 방에만 머물기보다 공공장소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만나 서로 알아가고 여행정보를 나눌 수 있었다. 덴마크에서 프랑스에서 일본에서 각자의 관심에 따라 각 도시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또는 전공 관련 학회를 마치고 남은 일정동안 관광지를 중심으로 다녀온 곳의 정보를 교환하면서 ‘아, 이런 여행을 다니는 게 나만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도 놓이고 여유도 생겼다.
시애틀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보스턴에서 온 흑인 여교사를 만났다. 보스턴에서 10여 년간 고등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쳤는데 교통체증과 과도한 업무에 지쳐서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서부로 와서 여행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고민 중이라고 하였다. 외인들이 모여 여행자의 입장에서 서로 정보를 나누다, 현지인의 실생활을 들여다보는 경험이었다. 외국인들이 서로 천천히 제2외국어인 영어로 소통하여 대충 알아들었던 상황과는 달리, 그 미국인교사는 엄청난 속도로 영어를 쏟아내었다. 자연스레 내가 말하는 것은 자제하고 대충 그런 얘기를 하는 건가 긴가민가하면서 일방적으로 듣고 있다가 슬쩍슬쩍 질문만 간신히 해서, 다시 그녀가 떠들도록 하여 듣는 척하였다. 자신이 이런 여정을 하며 읽고 있는 책을 보여주었다. <Wherever You Go, There You Are> 물론 그 책을 사서 읽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작가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는 자신을 좀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였다. 역시 교사라서 그런가? 열심히 듣는 척은 했어도 내가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을 깨달았던지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Are you following me?”
“Oh, no, no, no! Today, umm, I am busy, so I cannot follow you!”라고 느릿느릿 답하였다.
그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씩 웃고 말았는데, 그다음에는 자연스레 서로 자리를 뜨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물었던 걸 전혀 엉뚱하게 대답하여, 다시는 그녀를 볼 낯이 없었다. 다음에 공용 부엌이자 식당에 갈 때에는 그녀와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