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흐르는 강물처럼

by 김 신


1.

널 처음 본 순간이 생각나.
쌍꺼풀이 진하고 크고 동그란 눈, 맑은 눈동자.
코는 살짝 귀엽고, 입은 적당히 크고.
하얀 피부에, 귓바퀴 모양이 양쪽이 조금 달라 보였던 것도 기억나.
그건 누구도 쉽게 눈치채지 못할,
내가 혼자만 알게 된 비밀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았어.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끝나버린 걸까?

.
.
.

쉬는 시간,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너를 봤고
나는 그 순간, 첫눈에 반하고 말았어.
태어나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고,
너랑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하루 종일 고민했던 기억이 나.
심장은 쿵쾅거리고, 손바닥엔 땀이 맺혔고,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먼저 움직였어.

입안이 바짝 말라서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너는 조용히 내 말을 기다려줬어.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용기를 내서 인스타 맞팔 얘기를 꺼냈고,
너는 잠깐 생각하더니 알겠다고 했지.
그 순간의 안도감이란…
심장이 터질 것 같던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고
나는 조금 들뜬 표정으로 “디엠 할게”라는 말을 남겼어.

돌아가는 길, 혼자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라.
복도 끝에서 멀어져 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괜히 한 번 더 뒤돌아볼까 싶었지만
너는 고개 한 번 안 돌리고 교실로 사라졌지.

방과 후, 네 반에 가봤지만 너는 이미 가고 없었어.
괜히 그 자리에 몇 초간 멈춰 섰다가,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에게 디엠을 보냈어.
잠깐 고민도 했지만, 손은 이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지.

그때는 몰랐어.
그 순간이, 그 감정이
나중에 독이 될 거라고는...

2.

집에 돌아가는 길, 너에게 디엠을 보냈어.
보내자마자 괜히 폰 화면을 켜고 또 켜고,
알림이 울릴 때마다 괜히 설레고 조마조마했지.
한 30분쯤 지났을까?
너한테서 답장이 왔어.

고작 30분인데,
기다리는 동안엔 마치 3일쯤 지난 기분이었어.
너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들썩였고,
나는 바로 또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지.

하지만 이상했어.
답장이 점점 늦어졌고,
30분… 1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너의 반응은 조금씩 느려졌어.

‘바쁘겠지. 숙제하느라 그럴 수도 있잖아.’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어.
'혹시 내가 너무 들이댄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내가 혼자 들뜬 건 아닌가 하는 불안도 생겼지.

그래도 난 계속 이야기를 걸었어.
학교에서 웃긴 일이 있었고,
저녁엔 엄마가 김치찌개를 끓였고,
“너는 뭐 해?” 조심스레 묻기도 했어.
그냥… 너랑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었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너는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을 하지 않기 시작했어.
체크 표시만 남은 채,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네가 조심스럽게 보낸 메시지 한 줄이 도착했어.

“진욱아…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보여주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어.
무언가 잘못했나 싶었고,
그 말에 담긴 너의 솔직함이 날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지.

‘아… 내가 너무 서둘렀구나.’
그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어.

“내 딴에는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해.”

네게 곧 답장이 왔어.

“혹시 기분 상했다면… 내가 말을 잘못한 거 같아.”

서운했던 나는 답장을 했어.

"기분이 상한 건 아니야. 근데… 답장이 너무 늦으니까 좀 서운하더라."

잠시 후, 너는 짧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답을 보냈어.

"아… 그랬구나.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

너의 말에 마음이 조금은 풀렸어.
적어도 나 혼자만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순간, 깨달았어.
너는 나와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이구나.
내가 느끼는 호감의 속도가
너에게는 조금 벅찰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다짐했어.
앞으로는 좀 더 천천히,
조금은 느리게 다가가야겠다고.

3.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어.
학교에서는 자주 못 봤지만, 매일 카톡을 주고받고 가끔 전화도 하면서
처음보다는 훨씬 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지.

근데 이상하게도, 너한테서 뭔가 벽 같은 게 느껴졌어.
왜일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나한테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연락을 하는 거겠지…?

근데 시간이 지나도 그 거리감은 줄어들지 않았어.
오히려 점점 더 헷갈리고 힘들어졌어.

아영이 너랑 카페에서 데이트하는 날이면,
네 마음을 도통 모르겠더라.
관심 있는 것 같으면서도 딱 선을 그어서,
‘아, 내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지금 돌아보면, 너도 그때 천천히 마음을 열고 있었던 거였는데
나는 그걸 몰랐던 거야.
괜히 조급해지고, 불안해지고… 그러다 보니 나도 점점 여유가 없어졌어.

근데 아영아,
이런 내 마음을 너한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어.
왜냐면… 나는 진짜 너랑 잘되고 싶었거든.
그런데 내 속마음을 말하면
네가 멀어질까 봐 겁이 났어.
그래서 그냥 혼자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 내 마음이 행동이나 표정에서 드러났을 수도 있는데,
그게 너한테 어떻게 보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아직 많이 서툴렀어.
마치 아기는 자기가 아기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나는 내가 얼마나 미숙한지도 모르고
그냥 너한테 마음만 쏟고 있었던 거야.

4.

그렇게 불안하던 내 마음을 녹여준 날이 있었어.
바로, 우리가 처음 손잡은 날.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해.
입가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거든.

그날도 점심을 같이 먹고, 카페 가서 디저트도 먹고,
스크린 게임장도 갔었지.
나는 양궁을 했고, 너는 클레이 사격을 했어.
생각보다 너, 클레이 사격 진짜 잘하더라.
멋있었어.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어.
이게 너의 반전 매력인가? 싶었지.

그날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날이었어.
어떤 힘든 일이 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속에서 막 뜨거운 힘이 솟아나는 그런 느낌말이야.

시간이 훅 지나가더라.
집에 갈 시간이 돼서
널 데려다주고 싶었는데,
넌 다른 약속이 있다며 반대편 지하철로 간다고 했지.
그래서 난 그냥 네 손 꼭 잡고,
지하철 입구까지 데려다줬어.

“학교에서 봐!”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너를 바라보는 거였는데.

5.

그날 이후로 난 자신감이 넘쳤어.
넌 이미 내 거라고 생각했나 봐.
좋아한다고 말하고, 더 자주 연락하고, 전화도 자주 하자고 했지.
넌 나를 좋아하니까, 그래도 된다고 믿었어.

근데 한편으론 넌 좀 조심스러운 애니까,
괜히 먼저 고백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
그런 내 마음이 막 꼬이고 꼬여서 혼자 괴롭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너랑 나 사이가
이상하게 멀어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분명 좋아하고 있는데, 왜 자꾸만 멀어지는 걸까?
대체 왜 그런 거야?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힘들었어.
그래서 혼자 정했지.
한 달. 딱 한 달만 더 기다려보자.
그래도 네 마음이 안 열린다면, 그땐 포기하자고.

그렇게 맘대로 생각했어.
네가 어떤 마음인지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어.
어느새 나는 내 감정, 내 생각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며칠 후, 너한테서 카톡이 왔어.

진욱아,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우린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너 좋은 사람인 건 맞지만,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 순간, 딱 느꼈어.
아, 끝났구나.

나는 담담하게 답했어.

나랑 그만 연락하고 싶어?

진욱아... 넌 나한테 할 말 없어?

아영아, 그동안 고마웠어. 잘 지내.

널 붙잡는 게 네 선택을 무시하는 거라 생각했어.
그렇지만 네 말대로 친구로 지내는 건 어렵겠다고 생각했고,
전화번호랑 카톡, 인스타까지 전부 정리했어.
계속 보이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그런데 잠시 뒤, 너한테 다시 카톡이 왔어.

진욱아, 넌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근데 내가 마음이 커지려고 하면 오히려 부담이 돼서 뒷걸음질 치게 됐어
너의 속도에 내가 맞추는 게 너무 힘들었고,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었어. 그동안 고마웠어.

그 메시지 읽고 나서
진짜 머리가 띵했어.
그때부터였어.
미친 듯이 널 붙잡으려 했던 게.
근데... 소용없었어.

처음엔 곧 괜찮아질 줄 알았어.
우리 사귄 것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그게 아니더라.
내 마음은 이미 너무 뜨거워져서,
도저히 식힐 수가 없었어.
그 뜨거움에 손이 다 데일만큼,
진짜 많이 힘들었어.

시간이 조금 흐르니까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어.
그러고 나니까… 그제야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6.

중요한 건, 내 마음이었어.

그동안 내 마음은 아예 뒷전이었어.
그냥 너만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화도 나고, 아쉽고…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 척하면서 계속 너만 신경 썼지.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닌데,
나는 자꾸만 내 감정보다 너를 먼저 생각했어.
네 기분 맞추고, 네 말에 상처받고, 너한테 괜히 기대하고…
그럴수록 점점 어긋나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걸 몰랐어.

모든 일엔 순서가 있잖아.
집도 기초부터 단단히 다져야 오래가는 건데,
나는 그런 기초 없이 마음만 앞서서 너한테 갔던 것 같아.
결국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 사이도.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비가 꽃에 앉으려면,
향기도 좋고 예쁜 꽃이어야 하잖아.
근데 나는 그냥 길가에 자란 잡초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
그 어디에도 앉을자리가 없던.

한마디로,
나는 그렇게 매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

나한테 이런 감정을 느껴보게 해 준 것도,
짧지만 함께했던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던 것도,
지금 돌아보면 전부 다 고마운 일이야.
정말 좋았거든.

나, 조금은 달라졌어.
아직 마음은 아프지만 전보다는 훨씬 괜찮아졌고,
학교 생활도 더 재밌어졌어.
친구들이랑 웃는 일도 많아졌고,
예전처럼 뭐든 극단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됐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고 해야 하나?

아영아,
정말 고맙고… 그리고 미안해.
네 덕분에 많은 걸 느꼈고,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우리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완전히 끝은 아닐지도 몰라.
각자 다른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가 어디선가 또 마주칠지도 모르니까.

그땐 지금보다 좀 더 괜찮은 나로,
조금 더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우리로.

지금은 그냥,
이 마음 그대로 흘려보내보려고 해.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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