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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Dec 29. 2021

나는 악필이다

나는 악필이다.

글씨 못 쓴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한 번은 군 입대를 한 대학 선배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후에 휴가 나와서 하는 말이


너한테 편지 답장하고 있는데 옆에 둔 네 편지를 보고 너는 남자한테도 답장하냐고 하더라.


글씨 못 쓴다는 말은 일상이라 상처는 조금도 받지 않았다.


일단 천천히 쓰면 그래도 읽을 만은 한 것 같은데 내가 좀 성격도 급하고 말도 빨라.

머리에서 나오는 말을 손이 따라다가 보니 아주 글씨가 난리도 아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 말이 내 글씨는 때때로 해석이 필요해서 내 전용 사전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시간 될 때 편찬을 해보겠다 농담을 던졌었다.


하루는 초등학교 때 지인 분이 내 글씨를 보고 계셨다.

워낙 글씨 못 쓴다는 말이 일상인지라


“엉망이지요? 제 글씨.”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글씨 못 쓰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했어.”


그 말에 내가 오래도록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 한마디 말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나도 저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되자, 라는 생각이었다.


나도 저렇게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말해주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지만 그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귀는 열고 입은 최대한 닫아야 하는데 잘 안된다는 거지.


나는 악필이다.

악필이지만 글은 선필이고 싶다.


내 글이 칼날이 되지 않기를

내 글이 선한 힘을 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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