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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May 02. 2022

공중전화

수화기를 올려놓고 싶은 날

잔액이 남으면 공중전화 수화기가 올려져 있었다. 그건 무언의 약속이었다. 잔액이 남으면 다른 누군가가 전화를 걸도록 수화기를 올려놓는 일.


제법 긴 통화를 할 수 있는 잔액이면 그 돈이 아까워 어디든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나도 그랬다. 잔액이 남으면 수화기를 올려놓았다.


그날은 일부러 수화기 올려진 공중전화를 눈으로 찾았다.


전화를 걸고 싶은데 그런 마음 있잖아.


걸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남은 잔액이 아까워서 걸었어.


그렇게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싶었다.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3년째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걸었다. 걸었고 받기도 전에 전화 수화기를 올려놓았다.


미안, 목소리를 들을 자신은 없었다.


네 목소리를 들으면 그냥 울컥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자꾸 옛날에는 좋았다는 그런 상투적인 말, 하고 싶지 않은데 가끔 수화기가 올려진 공중전화가 그립다.


지금은 동전지갑이 필요가 없잖아. 그런 것들이 뭐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휴대폰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데 현금이니 카드니 들고 다닐 필요도 없잖아.


그냥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내가 건다는 것은 알리고 싶지 않은, 그런 거 있잖아.


그냥 단지


여보세요, 그 말만 들어도 위안이 되는 날이 있는데


지금은 그걸 할 수 없는 세상이라 서글프네.


갑자기 생각났는데 집 전화로 걸려오는 전화가 있었어,


내 목소리만 듣고 그렇게 듣다가 끊어 버리는 전화.


근데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았고 그냥 여보세요, 만 하다가 웃으며 끊고는 했었어.


같은 시간에 한참을 걸려오던 전화였는데


그 시간이면 전화기 앞에 앉아서 언제 벨이 울리나 또 한참을 기다렸었다.


방학이었고 전화는 오후 2시 이후에 울렸었다.


지금은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도 않고


모르는 번호는 수신 거절을 바로 눌러버리는 요즘.



그냥 갑자기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전화가 받고 싶은 오늘.


그냥 여보세요, 를 하다가 끊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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