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그곳
네 살에 그곳에 이사 와서 내 나이 서른에 부모님이 그 동네를 나오셨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그곳을 정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 때문이었다.
사채를 힘들게 갚아 드렸는데 계속 동네에 돈을 빌렸다.
동네에서 사채를 주고 이자를 받는 아주머니에게 끊임없이 돈을 빌렸다.
항상 이유야 많았다.
아빠는 술, 담배, 노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빠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명목 하에 돈을 빌리고 말 그대로 처자식을 고생시켰다.
나에게 상당한 도움을 준 사람이기에 도와주어야 했다, 힘든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사채를 빌리고 그 돈을 결국 처자식이 갚게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사채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
아주머니는 대놓고 우리에게 고등학교 졸업하면 3교대 공장을 가라고 했다. 주야간을 일해야 돈을 많이 번다고 했다.
그래야 아빠 빚을 갚는다며 이제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느 날엔가 엄마가 그러셨다.
너 요즘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 안 해? 동네 사람이 너 인사 안 한다고. 어른들 보면 인사해야지 왜 안 해.
엄마, 내가 아빠 빚 갚게 공장 가라 말하는 아줌마한테 인사까지 해야 해?
엄마는 그냥 말없이 방을 나가셨다.
나는 내가 자라온 그곳이 싫었다.
하루는 마을의 표지판이 집 앞에 세워졌다. 배추가 막 자라고 있는 그 땅을 파헤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표지판을 세우고 시멘트 작업까지 해놓았다.
그걸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말도 없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작업을 한 것이다.
대놓고 우리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장 아저씨에게 따지러 갈 참이었다.
아빠는 나를 말렸다.
사람이 손해도 보고 살아야지. 이게 뭐라고. 이 정도는 동네에 배려해도 괜찮아.
대체 아빠가 말하는 그 손해의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아빠가 말하는 그 배려는 왜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었다.
넷째까지도 아빠 빚을 갚느라 3년의 직장생활을 하고 대학을 갔다.
아빠가 서준 보증 빚을 갚느라 우리는 긴 시간 힘들었다.
회사 출근하는 마을버스 안에서 동생은 아빠가 보증을 서준 아저씨의 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mp3를 듣고 있었다.
동생은 아빠에게 매달 월급을 다 빼앗기고 10만 원으로 생활했다. 차비를 제외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직장인인 동생은 mp3는커녕 그 어떤 여유조차 없었다.
참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죄가 없다.
그 mp3가 어떤 경로로 그 아이 손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자체만 보고 우리만 고생하고 있다는 그 생각 자체가 서글프다. 왜 너는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지, 아빠를 꼬드겨 사채를 쓰게 한 너네 아빠는 어떤 사람인지 따져 묻고 싶은 내가 너무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침마다 그 상황을 대면하게 되는 동생의 감정은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후에 자신들은 떼어먹지 않고 오랜 기간이지만 갚았다고 했다. 긴 시간이었지만 있는 힘껏 섭섭하지 않게 갚았다고 했다.
그 말을 우리는 아빠 명의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 아저씨의 입에서 들었다. 명의를 사용하는 대신에 돈도 매달 드렸다나. 아빠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아저씨도.
상환을 제때 하지 않아 우리는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이미 섭섭해져 버렸다. 아빠에게 긴 시간 갚았다는 그 돈들을 우리는 알지도 못했다. 또 불쌍한 누군가를 도우셨으려나.
그 집 아이들과 가깝게 지냈던 우리는 이미 멀어져 버렸다.
우리 손으로 아빠 명의로 된 그 사업체를 정리하고 그 아저씨 소식을 듣는 일은 없었다. 하나의 금기처럼 우리는 오래도록 그 아저씨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그 아저씨를 미워했다.
그러나 결국 처자식을 생각하지 않고 보증을 서는 아빠를 원망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아빠를 ‘보증의 아이콘’이라고 장난을 치지만 나는 오래도록 아빠를 미워했다.
1년 전 아빠는 알츠하이머 치매 판정을 받았다.
생전 욕이라고는 안 하던 아빠가 욕을 하고 난폭해졌을 때 나는 그것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아주 착하고 바른 척 위선을 떨었고 이게 본모습이라고 치를 떨었다.
어릴 때 나는 아빠를 정말 좋아했다.
악몽을 꾸면 아빠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았다.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가까이하는 아빠가 좋았다.
아빠가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아빠가 보증을 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럼 나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을까
아니, 나는 다른 방법으로 다른 형태로 아빠를 미워했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였을까
그 미움이 돈이었을까
아니면 아빠가 저버린 신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