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스무 살이었고 나는 열아홉 살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빠른 년생이다.
하루는 K가 사주를 보고 싶다고 했다.
스무 살에 사주를 보겠다고 하면 뭐 얼마나 힘든 일이 겪었기에라고 생각하겠지.
K는 충분히 그럴만했다. 고되고 힘든 삶이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집을 나갔고 새엄마에게 당한 폭력을 말해주었다.
현관에서 머리채를 잡아 자신의 방까지 질질 끌려왔고 수시로 학대를 당했다고 했다.
머리를 하도 맞아서 가끔씩 골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흡연실 의자에 앉아 K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시발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욕은 썅년인데 그다음으로 싫어하는 욕이다. K는 새엄마를 그렇게 불렀다.
예전에 교수님이 욕의 의미를 알려주셨다. 얼마나 나쁜 욕인지 의미를 알면 절대 할 수 없다면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의미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 그냥 싫다.
사람을 미천한 존재로 부르는 것 같아서 너무 싫었다.
K와 B, 그리고 나, 셋이 바다에 놀러 갔었다. 그러다 K와 어떤 이유로 감정이 상했다. 나는 감정이 상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이 시발년아.
또 그 욕이다, 새엄마를 부르던 그 욕. 근데 이번에는 나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벽에 숙소를 나와 홀로 첫 기차를 탔다. 역 앞에 앉아 문이 열릴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새벽의 공기, 해뜨기 전의 그 무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밤새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오면서 창밖을 보며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창밖 풍경을 보는 척했지만 내내 울었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고 중간중간 어디쯤 왔는지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 친구와 연락을 끊었고 후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내 삶에서 지워버렸다.
몇 년이 흘러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K가 B와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B에게 놀러 갔다가 근처 K가 산다면 부르자고 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러자고 동의했다. 우리는 그냥 평범한 대화를 했다. 그게 전부였다. 과거에 대한 그 어떤 말도 서로 하지 않았다.
후에 B가 말했다.
너한테 엄청 서운했다고 그러더라. 네가 나중에라도 말을 걸 줄 알았다고 기다렸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더래. 얘한테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래서 상처 많이 받았다고 했어.
나는 욕을 들은 그 순간부터 K를 경멸했다. 어떻게 나에게 새엄마에게 하는 그 욕을 할 수 있는지 용서하지 않았었다. 마음속에서는 감히 네가 나한테 쌍욕을 해?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욕을 좀 하면 어떤가 싶더라. 화가 나서 욕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욕만 하지 않았지 마음으로는 K를 여러 번 난도질했다. 그저 나만 피해자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대화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미 눈빛으로 상대를 경멸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어.
나의 잣대, 나의 기준, 떨치지 못하는 피해의식.
마음 같은 거
가벼워지기를
비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