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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애써 설명하지 마라

진심은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히 느껴지고 읽혀지게 마련이다!

by 신정수

진심은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히 느껴지고 읽혀지게 마련이다!

사회적으로 큰일을 해내어 큰 자랑거리가 생겼을 때, 보통 많은 사람은 그 자랑거리를 최대한 많이 노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지나친 자랑이나 자기표현은 상대방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려운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다른 한 친구에게 그 자랑을 무용담처럼 멋지게 이야기하고 있고, 만약 그 상대 친구는 그 시험에 매번 낙방하고 있었다면, 그 낙방한 친구의 마음이 매우 편치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삶이 힘든 상대방을 약 올리는 수준으로까지 자신의 자랑거리를 과시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행해진다.


요즘은 여러 SNS(Social Network Service), 모바일 메신저 등의 발달로 자신을 적극 홍보하고, 자랑하고, 과시하고, 심지어는 찬미하는 일들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과시 행위들이 자칫 무분별해지거나, 그 도가 지나치게 되면 주변이나 친구에게는 간혹 사고성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도 신의 섭리 없이는 떨어지지는 않는다(윌리엄 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또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톨스토이가 나폴레옹의 교만과 오만을 지적하면서 빗대어 인용한 말로도 유명하다.

자기 능력을 과신하여 자랑하고, 인류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인격의 소유자’를 톨스토이가 강하게 지적했던 것이다.


요즘과 같은 자기표현의 시대 혹은 자기 피알(PR) 시대에도 우리가 꼭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무심코 행하는 자신의 자랑이나 과시가 상대를 무척 속상하게 하거나, 언짢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즉, 무심코 행하는 자기과시나 자랑이 배려가 없는 처사가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자랑이나 자기과시를 상대방이 흔쾌히 받아들여 같이 기뻐해 주기라도 하는 상황이 연출 된다면 더욱 괜찮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상황도 얼마나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진정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랑하고 과시하기 전에 상대의 처지를 아주 잠깐씩이라도 한번 헤아려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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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된 사람(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자랑할 만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여도, 가능한 그 대단한 자랑이나 과시 자체를 일단은 자제하는 것이 더 좋다. 이는 자칫 상처받을 수 있는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마음속으로의 겸손·겸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자랑거리를 애써 감추었는데도 어떠한 경로로 그 사실이 주변으로 전해졌을 때는 상대방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사실을 대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그 사실을 감동에 가까운 사건으로 접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큰 자랑거리가 생겼어도 상대를 배려하여 표시 하나 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친구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면, 살짝 감동으로 그 사실을 접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결과는 소소한 자기희생 혹은 내면적 성찰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겠다. 설령 그 자랑거리를 상대방이나 주변이 전혀 끝까지 못 알아주어도 상관은 없겠다. 이미 그 자랑거리에 대한 과시 그 자체를 마음으로 포기하였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를 이미 마음속에서 만족하여, 더 큰 마음의 보상과 행복을 이미 경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세상의 이치는 자명하다. 티 나게 드러내려고 노력한다면 별로 폼나게 드러나지도 않을뿐더러, 드러나더라도 금방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 보일 것이고, 되도록 드러내 보이지 않고자 한다면 더욱 잘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또 과장이나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그것의 그릇됨이 더욱더 강하게 드러나 보이고, 진솔해지고 겸손해진다면 그 진심과 진정성이 더욱 진하게 드러나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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