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풀을 최대한 넓히자고!
인생은 결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웬만하면, 지금 생각하는 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
30년 살면서 깨달은 몇몇 인생의 진리들이 있는데, 특히 근래에는 위 두 가지가 확실하게 와닿았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세워도, 내가 원하는 길 그대로 쭉 직진해서 목표 지점에 닿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룰 수는 있어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 혹은 최종적인 성취의 형태가 원래 계획했던 모양과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특히 부모님의 품을 떠나 상경해서 오롯이 혼자의 삶을 시작했던 20대부터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왔는데, 그럼에도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이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지만.
나는 고집이 무척 센 편이었다. 이걸 하려면 이것만 해야지! 다른 길은 없어. 다른 방법도 없어. 오로지 우직하게, 내가 하려고 했던 일만 딱! 그 길만 딱 걸어야 해. 샛길은 안 돼.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려면 무조건 정통길을 걷고, 한 우물만 지독하게 파야 한다 생각했다. 독단적이고 고집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유의미한 성취들은 대부분이 샛길을 탔다. '무조건' 수능 점수, 그러니까 정시로 갈 줄 알았던 목표 대학은 급하게 준비했던 수시 전형으로 합격했고, '무조건' 일반행정직이 될 줄 알았던 공무원 직렬은 역시 원서접수할 때 이상한 직감이 들어 급히 바꾼 특수 직렬에 합격했으니까. 그나마 얼추 원하는 방향으로 흐른 건 '투고 후 기획출판'이 애초에 계획이었던 출간뿐이랄까.
그리고 그 후, '작가가 되어보자'는 간절한 바람이 나를 찾아왔다. 에세이 출간 이후 몇 년 만에 세운 제대로 된 목표였다. 보통 나는 목표하는 바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무조건 한 우물만 미친 듯이 파야한다는 그 억센 고집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자.'
최대한 넓게 목표를 잡았다. 그리고 과연 무용한 고집이나 아집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완전한 오픈 마인드로 이 '글'이라는 세계에 접근을 했다. 어떤 장르도, 어떤 종류도, 전체연령가부터 29금까지 그 어떤 수위도 받아들일 작정이었다. '내가 이걸 쓸 수 있을까?' 속으로는 어쩔 수 없이 의심을 한다 쳐도 결코 입 밖으로 '못 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에세이를 쓴다. 반응이 미미하다. 그럼 소설을 쓴다. 출판사에 투고를 한다. 반려비를 우수수 맞는다. 도저히 세상에 나올 것 같지가 않다. 그러면 시나리오를 써 본다. 단막극, 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다 뜯어서 해본다. 공모전에 제출한다. 그러나 수백 대 일,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될 일말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희망이 없다. 외롭고 고독하다. 그러면 이제 웹소설이라는 것을 한번 써본다. 반응이 있다. '개재밌어요.' 댓글을 보고 내 글이 똥이 아니라는 희망이 생긴다. 자신감이 차오르고, 그 자신감으로 기죽지 않고 에세이, 소설, 시나리오, 웹소설을 또 쓴다.
그게 잘 안 되면, 다른 걸 해봐.
남편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이다. 이게 잘 안 되면, 다른 걸 해봐. 다른 걸 써보고, 글이 아니라 아예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좋겠지. 아무리 오픈마인드로 세팅해도 타고난 고집은 어쩔 수 없는지 처음에는 남편의 이 말에 저항하듯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적으로 믿는다.
만일 내가 오로지 에세이만 쓸 거다, 오로지 정통 소설만 쓸 거다,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오로지 대본만 쓸 거다,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하며 한 길을 팠다면 '작가가 될' 혹은 '글로 먹고살 수 있는'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또한 독자님들의 신랄한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웹소설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재밌다'는 댓글도, 출판사의 컨택도 없을 것이었겠고, 벽만 보고 쓰다 이만 지쳐버린 나는 이 목표를 일찍 포기해 버렸을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글의 세계에서도 트렌드가 확확 거꾸러치며 바뀌는 요즘 세상에서는 외려 여러 장르에 발을 담그는 게 보다 더 신선하고 번뜩이는 장면을 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직 '글'로서 무언가 이룬 게 없는 쌩신인초짜무지렁이인 나조차도 그런 다양한 장르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이점을 바로 이 두 눈으로 확인해 버렸으니까.
글이 점점 읽히지 않는 세상에서 요즘은 딱 한 개 혹은 두 개의 장르만 쓰는 작가도 드물다고 한다. 그러니 힘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우물을 만들고, 그중 특별히 더 나와 맞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건 더 열심히 파고.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회가 올 것이다. 나는 그랬다. '그저 가볍게 즐겨보자!' 했던 웹소설에서 예상치 못한 기회가 날아들었다. 그건 고독한 글쓰기의 나날들에 몹시 큰 빛줄기가 되어 주었고, 나는 막막한 절망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작가의 길에 오를 수 있었다.
목표에 다가가는 스타트를 끊은 지금, 앞으로도 나는 내가 파 놓은 여러 우물들을 저글링하듯 착실하게 관리하면서 최대한 기회의 풀을 넓힐 것이다. 삶은 결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기회가 오는 타이밍이나 형체 역시 결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이게 안 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다른 걸 해보자.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