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줄 아는 것이 그것 뿐이다.

[D-293] 그런데, 한 줄 아는 게 없어요.

by Mooon

D-293. Sentence

그런데, 한 줄 아는 게 없어요.


IMG_0472.PNG @유퀴즈 <고현정 배우편>

느낌의 시작


“그런데, 한 줄 아는 게 없어요.”

짧지만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는 말. 오래전 고현정 배우가 유쿠즈 영상에서 내뱉은 이 한 마디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흐름


꽤 오래전에 보았던 영상인데도, 나는 문득문득 다시 찾아보곤 한다. 세상에는 늘 시선을 비틀어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누군가는 그 말을 또 다른 의미로 곡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것은 허래허식 없는 인간 고현정이었다. 화려함 뒤에 숨은 진심, 꾸며지지 않은 결핍, 있는 그대로의 고백.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배우 고현정’이 아니라 ‘사람 고현정’을 만나는 시간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말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나는 생각한다. 왜 이 말에 이토록 오래 머무는 걸까.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그렇게 달려서 뭐가 남아?” 혹은 “그게 과연 삶이 되긴 해?” 매주 둘째와 함께 가는 센터의 선생님도 내 일주일 이야기를 듣고는 “말만 들어도 너무 힘드실 것 같아요”라고 하신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걸까.


내일도 예외는 없다. 아침에는 1, 2, 3교시 연달아 수업이 있고, 오후에는 이제 막 시작한 프로젝트 온라인 정기 미팅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오후 2시까지 심사 의견을 반영한 논문 최종 수정본을 제출해야 이번 호에 실릴 수 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머릿속은 계속 굴러가고, 하나를 마치면 곧바로 또 다른 일이 줄지어 서 있다. 요즘은 몸이 이 모든 걸 버텨내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사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여유 있던 지난 학기에 조금씩 벌려놓은 일들이, 이제 와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분이다. 돈을 크게 버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는 내 일정을 두고 “돈 못 버는 연예인 스케줄”이라며 농담처럼 말한다. 그러게 말이다.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을까. 맞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정말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미술을 좋아해 입시를 치르고, 예술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그저 좋아하는 걸 좇으면 충분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였을까.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나 자신을 인정하게 된 건. 내가 가진 무기는 단 하나, 성실함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천재적인 두뇌와 감각으로 단번에 성과를 내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나는 늘 차근차근, 한 계단 한 계단 성실히 밟아야만 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멈추지 않았기에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가 할 줄 아는 건 성실함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 성실함 덕분에 여전히 살고, 일하고, 사랑할 기회가 내게 주어지고 있다.


다만 요즘 내가 경계하는 건 ‘바쁨’이라는 핑계다. 바쁘다는 말로 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조급함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걸 망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매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아침에 두 아들과 눈을 맞추며 “좋은 아침”을 건네기. 집을 나서기 전 짧게 안아주기. 오랜 친구에게 커피 한 잔을 보내며 “이번 주는 어땠어?” 하고 안부 묻기.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오늘의 자리를 성실히 살아내기. 결국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런 것들이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곁의 사람들에게 눈을 맞추고 격려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게 전부이지만, 동시에 그게 다다.



내 안의 한 줄

나는 그 성실함으로 오늘을 지켜내며 살아간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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